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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지독한 전쟁, 지독한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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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지독한 전쟁, 지독한 위선

입력
2007.07.3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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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KBS TV가 방영한 '아프가니스탄, 지독한 전쟁'이란 특집 프로그램을 보았다. 공교롭게도 한국인 납치사건으로 국민 이목이 쏠린 상황에서, 오랜 전쟁의 참화에 시달리는 아프간의 현실을 생생한 르포로 전하고 있다.

특히 탈레반 폭정을 종식시켜 세상을 평안하게 하겠다던 전쟁이 아프간 민중의 삶을 처참하게 짓밟는 모순과 위선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우연히 때맞추어 완성했는지 알 수 없으나, 전쟁의 진면목을 드물게 냉철한 시각으로 조명한 프로그램을 사회가 함께 음미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전쟁의 큰 그림은 관심 밖에 둔 채 민간인 희생 등 직접 이해가 얽힌 때만 맹렬히 논쟁하는 사회이기에 더욱 그렇다.

● 아프간 참상에 무심한 사회

이 프로그램이 돋보인 것은 아프간 민중의 꾸밈없는 육성과 몸짓으로 전쟁의 진실을 전한 때문이다. 흔히 쳐드는 종교와 이념, 정의와 국익 따위의 고상한 명분은 들리지 않는다.

대신 탈레반 폭탄 테러와 미군의 무차별 폭격에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의 부모처자가 울부짖으며 저주를 퍼붓고, 오로지 굶주리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형제가 각기 경찰과 탈레반에 가담해 총을 마주 겨누는 비극을 증언하는 모습을 되풀이 보여준다. 자신의 눈과 발을 잃은 것보다 아이들이 마실 물조차 없는 처지를 하소연하는 것이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아프간 인들의 혹독한 삶의 현실은 "전쟁은 탈을 쓴다"는 경구(警句)를 새삼 일깨운다. 아프간 침공도 테러리즘과 탈레반 학정(虐政)을 척결, 정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한 인도주의 전쟁을 표방했다.

이게 애초 전략적 이익을 노린 전쟁의 가면이라는 비판은 잦아들지 않았다. 다만 우리 사회가 애써 귀 기울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공영방송이 모처럼 전하는 전쟁의 진실이 낯설고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전쟁 동반자 영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는 이런 진실에 익숙하다. 서구 언론은 한국인들이 납치된 가즈니 주 등 아프간 남부에서 탈레반 세력이 확산되는 것은 미군과 나토 국제치안지원군(Isaf)이 안정과 평화는커녕 살상과 파괴만 안겨준 탓이라고 지적한다.

미ㆍ영 점령군은 산악과 촌락에 은신한 탈레반에 무차별 폭격을 일삼는 바람에 숱한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다. 이 때문에 복수를 다짐하며 탈레반에 가담하거나 동조하는 민간인이 늘고 있고, 탈레반은 폭탄 테러와 외국인 납치로 허울 뿐인 카불 정부와 참전국 민심을 흔드는 교란전술을 쓰고 있다.

이에 따라 영국에서는 "한국전쟁 이래 가장 힘든 전쟁"이라는 탄식이 나오고, Isaf에 몇 천명씩 파병한 독일 등 나토 국가들은 외국군과 외국인을 혐오하고 적대하는 민심이반에 당황하고 있다. 미국은 나토군 증파를 바라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오히려 군사활동을 거부한 채 기지만 지키고 있다.

위선적인 전쟁 목표는 멀리 있는 가운데, 아프간 사회와 민중의 삶은 날로 해체되고 피폐해지는 상황은 비극적 역사가 반복된다는 지적을 낳았다.

일찍이 영국과 러시아는 아프간 왕정을 전복시키고 여러 부족과 파벌을 암살과 회유, 음모와 배신으로 조종해 국가 정체성을 해체했다. 그렇게 꼭두각시 정부만 남은 나라를 서로 제국주의 진출을 견제하는 완충국가로 삼았다.

미국과 서구도 결국 이를 답습하고 있다. 우리는 납치세력을 강온파로 분류하지만, 유럽 언론은 탈레반은 동질성을 상실한 채 파키스탄 등은 물론이고 미국과도 결탁한 집단으로 나뉘어 각기 생존투쟁에 몰두하고 있다고 전한다. 저항투쟁과 범죄행각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황은 아프간의 비극적 운명을 상징한다는 지적이다.

● 천박한 대외 인식 반성해야

이런 아프간의 진실을 외면한 채 맹목적 동맹과 국익 논리를 앞세워 파병의 당위성을 부르짖은 이들은 지금도 사회의 성찰을 극구 가로 막고 나선다. 인질 구명이 급하다는 인도적 명분을 쳐들지만, 아프간과 한국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은 채 천박한 대외 인식과 행보를 부추긴 과오를 감추기 위한 거짓된 외침일 뿐이다. 지독한 위선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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