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인질 22명을 구출하기 위해 절실해진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둘러싸고 한미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이 최근 이 문제를 놓고 전화 협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부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심지어 전화 협의 자체에 대해서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이 같은 반응은 여러 관측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이번 사태 해결의 핵심이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 맞교환에 있다는 점에서 한미 협의가 매끄럽지 못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미국으로서는 동맹국이긴 하지만 탈레반 수감자 석방에 유연한 대응을 바라는 한국의 입장을 수용하기는 어렵다. 세계적인 대테러 전쟁을 명분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분쟁에 개입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테러 조직의 요구를 들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완전히 뒤흔드는 사안이다. 당연히 이 문제에 대한 한미 협의가 원만할 수 없다. 미측의 입장은 “아프간 정부의 협상을 좀 더 지켜보자”는 소극적인 자세이거나 “테러 조직의 압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미국을 밀어붙이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비록 인질 1명의 희생이 있었지만 여전히 인질 석방 협상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한미협의에서 우리 정부는 탈레반 수감자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요청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규모 인명 피해 등 급격한 상황 악화로 이어지거나 이런 가능성이 높아지면 우리 정부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 미국에 대한 압박이 불가피해진다.
우리 측이 아프간과 이라크 등 분쟁 지역에서의 조기 철군 등을 대미 협상카드로 쓸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3월 이탈리아도 자국 기자를 석방시키기 위해 국제적 비난을 무릅쓰고 철군 카드를 사용해 탈레반 수감자와의 맞교환을 이끌어냈다. 이 경우 한미 갈등 수위가 높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전개는 한미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이 “조속한 석방 촉구”라는 원론적 언급만 한 채 외곽에 머물러 있고, 북핵,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한반도 운명을 좌우할 현안이 걸린 우리 측도 미국을 개입시키는 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이번 사안에 대한 한미 간 협조는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며 “어떠한 경우에도 한미 간 긴장이 조성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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