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피랍 문제 해결의 키는 아프가니스탄의 카르자이 정부가 쥐고 있다. 지금까지 명목상은 그렇다. 탈레반이 일관되게 요구하는 탈레반 수감자 석방의 결정권이 카르자이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한계가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의 취약한 지지 기반이 운신의 폭을 좁히면서 탈레반과의 인질석방 협상이 지지부진 하다는 것이다. 아프간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는 등 사태 장기화가 우려되는 국면이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미국 지원 하에 2004년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올랐다. 외견상 정통성을 갖추었지만 집권 3년 만에 민심은 이미 떠나 버린 상태다. 탈레반과 지방 군벌이 득세하면서 그의 행정력과 치안권은 수도 카불 정도에만 그치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그에겐‘카불 시장’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민심이탈은 무엇보다 재건사업이 지지부진하고, 경제가 호전 기미를 보이지 않은 탓이 크다. 전 국민 70% 이상이 실업자란 말을 들을 만큼 마땅한 일거리가 없는 형편이다. 국제사회의 재건과 복구지원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2002~2006년 아프간에 제공한 재건ㆍ복구비는 73억달러. 같은 기간 군사비 사용은 825억달러로 아프간은 여전히 ‘전쟁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탈레반 정권 붕괴 후 서방지원을 기대했던 아프간 국민의 실망은 커지고 있다. “탈레반 시절보다 더욱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불만이 팽배하면서 서구에 대한 반감도 쌓여가고 있다. 국내 기반이 흔들리는 카르자이 대통령은 탈레반을 축출하고 자신에게 권력을 준 미국에 절대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의 눈밖에 나거나 미국의 협조가 없다면 정권이 곧바로 붕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인 인질협상의 최대 걸림돌인 탈레반 수감자 석방 역시 그로선 미국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그가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단독으로 결단하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올 3월 탈레반 수감자 5명과 이탈리아 기자를 맞교환 했다가 미국, 영국 등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샀기 때문이다. 당시 카르자이 대통령은 “더 이상 석방 협상은 없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가 탈레반 수감자를 석방할 경우, 그나마 남아 있는 국내 지지세력의 기반까지도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도 맹점이다. 이런 식으로 자국민 인질은 놔두고 외국인 인질 석방에 매달리면 “외국인을 살리기 위해 내국인을 죽이느냐”는 반발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카르자이 대통령이 한국인 피랍 문제 해결의 키는 쥐고 있지만, 그 키로는 어떤 문도 열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