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세계적인 거장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 감독이 30일 타계했다.
베리만 감독은 이날 오전 7시께(현지시각) 발트해의 파로(Faro) 섬에 있는 자택에서 89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가족들은 그가 평온한 가운데 임종했다고 전했으나 자세한 사인을 밝히지는 않았다.
베리만 감독은 단순한 오락물로 천대받던 영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선구적인 인물이다. 1918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0대 때 연극 연출을 시작했으며 1944년 영화 <고통> 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가벼운 희극을 만들었고, <여름 밤의 미소> 로 55년 칸영화제에서 ‘시적 유머상’이라는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여름> 고통>
베리만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57년 <제7의 봉인> 을 만들고부터다. 신과 고통 받는 인간의 존재를 형이상학적으로 병치(倂置)한 이 작품은, 영화를 단숨에 순수예술의 도구로 승격시키며 사람들을 충격 속에 빠뜨렸다. 이후 <처녀의 샘> <산딸기> 등을 통해 철학적인 영화 실험을 이어갔으며, 63년 작 <침묵> 에서는 “신은 침묵하고 있다”는 불후의 명대사를 남겼다. 침묵> 산딸기> 처녀의> 제7의>
그의 작품들은 서구 지성계의 화두였던 실존주의의 첨단을 달렸고 모더니즘 예술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초현실적 기법으로 사변적 주제만을 천착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등 현실 사회의 문제를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비판에 대한 반성은 <페르소나> <치욕> 등 예술가의 무기력과 고통을 담은 작품을 낳기도 했다. 치욕> 페르소나>
후기에 들어서는 <정열> <외침과 속삭임> 등을 통해 여성의 조건과 본능을 냉정한 시선으로 고찰했다. 2003년에는 20년이 넘는 공백을 깨고 텔레비전 영화 <사라반드> 를 제작하기도 했다. 사라반드> 외침과> 정열>
평생 6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베니스영화제 비평가협회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97년 칸영화제는 ‘최고의 종려상’이라는 전무후무한 영예로 그의 공로를 기리기도 했다.
베리만 이후 많은 예술가들이 영화의 길로 들어섰는데, 빔 벤더스 감독은 “베리만에 대한 어떤 해설도 일종의 건방이다. 그의 영화들은 영화사의 거대한 등대로 서 있다”고 평가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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