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한국인 피랍사건이 오늘로 벌써 12일째다. 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고 나머지 22명의 목숨도 황량한 아프간의 산악지대에서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다.
탈레반 무장단체의 선전을 위해 마련된 듯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피랍자들의 건강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불결한 식수와 빈약한 음식물, 피 말리는 두려움의 스트레스 상황은 멀쩡한 사람도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다. 무장단체의 살해 위협도 위협이지만 인질사태의 장기화가 두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탈레반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자는 "인질 중 17명이 아프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아프간 정부와 한국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이나 정부가 석방 노력에 한층 박차를 가해야 할 상황임을 일깨워 준다. 대통령 특사로 파견된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이 어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을 면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구하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충분히 전달했을 줄로 안다. 우리는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필요할 경우 금전 제공 등도 할 수 있다고 보며 정부가 이런 수단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탈레반 무장단체가 요구하는 탈레반 수감자 석방은 우리 정부의 소관 밖이며 아프간 정부와 미국에 달려 있다. 정부는 관련국 설득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테러단체의 요구에 응할 경우 대테러 전쟁 전열을 흐트릴 것이라는 우려를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22명의 무고한 생명은 우선 구해놓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정부는 국내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프간과 이라크 등에 병력과 물자를 보내 대테러 전쟁에 협조해왔다. 아프간과 미국은 우리 정부의 이런 노력을 감안해서라도 적극 협력하는 것이 마땅하다.
탈레반 무장세력에도 촉구한다.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협상 실패의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요구 조건을 낮춰 무고한 민간인들을 조속히 돌려 보내라. 피랍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아프간 정부와 한국 정부가 아니라 전적으로 당신들이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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