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특사인 백종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이 29일 오후 4시30분(한국시간, 현지시간 정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을 만나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달라는 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함에 따라 아프간측 수용여부가 인질 사태 해결의 중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백 특사 면담 후 “피랍 한국인 22명의 석방을 위해 아프간 정부는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카르자이 대통령이 한국인 피랍사태에 대해 언급한 것은 19일 사건 발생 이후 처음이다.
아프간 정부가 수감자 석방에 전향적으로 나올 경우 탈레반 무장 단체와의 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인질의 부분 석방 등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만으로는 아직 사태를 낙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아프간 정부가 결국 탈레반 포로 석방을 거부한다면 추가 인질 살해 등으로 사태가 급격히 악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백 특사는 탈레반 포로 석방의 대가로 대규모 경제 지원 등 구체적 대가를 아프간 정부에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프간 정부는 그러나 즉답을 하지 않은 채 깊은 고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카르자이 대통령이 백 특사와 즉각 면담을 갖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프간 정부의 입장이 그리 단순치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탈레반 역시 카르자이 대통령과 백 특사의 면담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탈레반이 이날 새롭게 최종 협상시한을 30일 오후 4시30분(한국시간)으로 정한 것 역시 백 특사 면담 후 아프간 정부의 탈레반 포로 석방 제안 수용여부를 지켜보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백 특사의 현지 활동 및 결과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무장 단체에게 자칫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해서다.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은 “카르자이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탈레반에 줘서는 안 되는 정보를 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상당 시간이 지난 후 절제된 범위에서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특사 파견은 배형규 목사 피살 이후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진정 국면으로 전환시켰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배 목사 살해 이후 “협상 시한에 관계 없이 매일 인질 한명을 죽이겠다”고 협박의 강도를 높였던 무장 단체는 이후 돌발 행동을 자제하고 있다. 현지에서도 “무장 단체가 협상 시한을 무기한 연장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무장 단체가 얼마나 기다려줄지는 미지수다. 이들은 한국 정부의 ‘특사 카드’가 효과적이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이르면 30일 시한 이후 인질들을 추가살해 함으로써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의 특사 파견이 피랍 한국인들에게는 ‘양날의 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세프 아마디는 “만약 아프간 정부가 (백 특사와 카르자이 대통령 면담 후에도) 탈레반 수감자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한국인 인질을 살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거듭 경고, 이 같은 분석을 키웠다.
신재연 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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