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으로 저열하고 부끄러운 본능으로 여겨지던 '이기심'을 인류 발전의 위대한 원동력으로 명예를 회복시켜준 사람은 경제학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빵 제조업자들의 이타심이 아니라 돈을 벌려는 이기심 덕분이다."
그의 <국부론> 에 나오는 이 말은 이기적 동기를 마음껏 발현할 수 있는 제도가 국부 창출의 지름길임을 주장한다. 그렇다고 그가 이기주의의 찬양자는 아니다. 스미스는 이기심이 타락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양심이라는 도덕적 가치의 조언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부론>
▦ 하지만 200여년 뒤 그의 후손인 리처드 도킨스 영국 옥스포드대 교수는 인간의 이타적 행동조차 이기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는 충격적 주장을 펼쳤다. 1976년 출간된 도킨스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 는 개체의 모든 행동은 자신을 복제하려는 유전자의 이기적 목적의 결과이며, 인간은 유전자의 지시를 수행하는 '생존기계'에 불과하다고 선언했다. 이기적>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무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같은 동물들의 이타적 행동 역시 자신과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려는 이기적 동기 때문이다. 신의 존재는 당연히 망상이라는 그의 또 다른 책이 최근 국내에서 출간됐다.
▦ 시장과 경쟁의 효율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이기적 자본주의는 물을 만났다. 물질적, 기술적 진보는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빈곤과 상대적 불평등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다시 도지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치유하는 길은 이타주의적 관심이다. 지난 6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하버드 대학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은 바로 그런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특히 시장의 기능을 활용해 빈곤한 사람들을 껴안고 불평등으로 고통 받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대안도 제시했다.
▦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있는 이념적 논쟁의 배경에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있다. 보수와 진보, 생산과 복지의 논쟁이 그렇다.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대립적 주장처럼 보이지만 도킨스 이론에 따르면 모두 같은 유전자의 지시에 따른 행동이다.
다만 그 목적을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유전자의 번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발전'이다. 이기심은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틀림없지만, 이타심은 자본주의를 더 건강하게 한다. 정부가 어제 기부문화 활성화 방안을 공개한 것은 그런 취지에서 반가운 일이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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