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차 베이징 예비회담을 앞둔 양국 대표단은 5월13일 저녁 첫 상견례를 가졌다. 한국대표단을 환영하는 중국측 본회담 수석대표 주최의 만찬이었는데 이 자리는 서로 상대를 저울질해보는 탐색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별로 긴장되지는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대표단 모두가 그래 보였다.
한국대표단은 예비회담 수석대표 겸 본회담 차석대표인 나를 비롯해 변종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국제안보비서관, 한영택 외교안보연구원 수석연구관, 김하중 참사관, 신정승 연구관, 이영백 사무관(통역) 등 6명이었다.
저마다 내로라 하는 중국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우리의 입이 되어줄 이영백 사무관은 일제강점기 중국본토에서 항일투쟁을 벌이던 독립투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국어 실력은 중국인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탁월했다.
장루이지에(張瑞杰) 예비회담 수석대표를 포함해 리빈(李濱) 조선처장(한국과장), 탄징(譚靜) 1등 서기관, 띵쯔?(丁志壯)타이완 사무판공실 부처장(부과장), 싱하이밍(刑海明) 조선처 직원(통역) 등 5명이 쉬둔신(徐敦信) 본회담 수석대표를 중심으로 우리를 맞았다. 중국대표단의 쉬둔신 본회담 수석대표가 주최하는 만찬장은 댜오위타이(釣魚臺) 14루 1층 연회장이었다.
중국대표단 역시 하나같이 손꼽히는 한반도전문가로 구성됐다. 나의 카운터파트인 장루이지에 대사는 당시 63세로 한국과 인연이 깊었다. 화교출신으로 일제강점기인 1929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화교서당에 다니면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배웠다.
평양의 화교중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방을 맞게 됐다. 해방 뒤 진학을 포기하고 만주로 건너가 혁명대열에 뛰어들었다. 마오쩌둥(毛澤東)과 장제스(蔣介石)가 중국의 패권을 놓고 일전을 겨루던 시절이었다.
장 대사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전인 1948년 동북공산당 판공처 직원으로 평양에 파견됐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중국이 평양에 대사관을 개설하면서 대리대사의 비서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외교부 조선처장(한국과장)을 거쳐 에티오피아와 스리랑카 주재 대사를 역임하고 본부대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 한중수교교섭의 특명이 떨어졌다. 6척 장신에 문제의 핵심을 직선적으로 찾아가는 곧은 성격이고 한반도에 관한 한 남북을 두루 꿰뚫고 있었다.
중국 외교부에서는 첫째가는 한국통이자 한반도 전문가 그룹의 대부역할을 해 왔다. 장 대사는 한중수교 직후 초대 주한대사 후보 영순위였으나 60세 정년 규정에 걸려 은퇴하고 현재 중한우호협회 고문으로 봉직하고 있다.
당시 장팅옌 아주사 부사장(아주국 부국장)은 대표단에 속하지는 않았으나 예비회담을 막후에서 총괄하는 실무책임자였다. 1936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장팅옌 부사장은 베이징대 조선어과를 졸업한 엘리트로 장루이지에 대사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한반도 전문가였다.
1992년 한중수교 후 초대 한국대사로 부임하여 5년간 재직하였다. 장 부사장은 특히 85년 중국 어뢰정 한 척이 선상반란으로 우리 영해를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양국의 협상에 깊이 관여했다.
리빈 조선처장 역시 베이징대 조선어과를 졸업하고 평양에서 오래 근무한 한반도 전문가로 그 후 장팅옌 우다웨이(武大偉) 대사에 이어 50세가 되기 전에 한국주재 대사를 역임했다.
탄징 1등서기관은 대표단의 일원으로 남편인 장팅옌 부사장과 베이징대 조선어과 동기생이며 같은 시기에 외교부에 들어갔다. 1983년 5월5일 어린이날 중국 민항기가 피랍돼 춘천에 강제 착륙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중국대표단 일원으로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민항기 사건 직후에도 탄징 여사는 국제회의 참석 명목으로 한국을 조용히 다녀 간 적이 있다. 그 외에 띵쯔? 부처장과 싱하이밍 직원(통역) 등이 있었는데 싱하이밍씨는 조선처장과 주한 중국대사관 참사관을 역임했다.
연회장 한 가운데 둥근 테이블에 장 대사와 내가 마주 앉고 양측 대표단원들이 섞어 앉았다. 한국인이 댜오위타이에 발을 내딛기는 이날이 처음이었다. 댜오위타이의 요리는 과연 듣던 대로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특히 오징어알 살라탕과 불도장, 사자두, 베이징오리 등 중국을 대표하는 요리들이 앞 다투어 나왔다. 마오타이와 소흥주, 그리고 장성 포도주가 곁들여졌다. 양측대표들은 첫 대면부터 긴장하거나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럽게 대화와 웃음을 교환하며 술을 권하며 벽을 허물어갔다.
한중청소년문화협회(미래숲) 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