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경석 지음 / Human&Books 발행·448쪽·3만5,000원
‘알프스에는 악마가 살고 있는 게 틀림없다.’
중세 이후 유럽인들은 벼락과 눈사태로 인간을 괴롭히는 저 얼음덩어리 알프스를 악마의 소굴이라 믿었다.
그 같은 중세적 환상이 깨진 것은 샤모니의 수정 채취업자 자크 발머와 의사 가브리엘 파카르가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4,807m)에 오른 1786년이었다. 산악계는 그래서 그 때를 근대 등반의 시점으로 보고 있다. 지금 알프스는 케이블카와 등산열차가 높은 곳까지 연결돼 돈만 있으면 누구든 편히 오를 수 있다.
8,000m급 봉우리가 즐비한 히말라야도 중턱까지는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많은 루트가 개설돼 있고 곳곳에 숙소가 마련돼 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라도, 높은 산의 중턱까지는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큰 욕심 내지 않고 자신의 체력에 맞춰 서서히 산을 오르는 이런 행위를 흔히 트레킹이라고 부른다. 등반과 하이킹의 중간쯤 되겠는데, 하루 15~20㎞ 정도 걷고 5,000m 이하 높이까지 오르는 것이 일반적 형태다.
저 높은 곳까지는 아니지만, 중턱까지는 올라 산의 품에 안기겠다는 트레킹 바람이 전세계에 불고 있다.
채경석의 <트레킹 세계의 산을 걷는다> 는 트레커를 위한 안내서다. 6개 대륙 22개국 55개 명산의 유명 루트 60여개를 소개한다. 트레킹>
히말라야 원정을 다녀온 대학 산악부 출신의 저자는, 산은 높고 자신은 그 높은 곳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트레킹으로 방향을 틀었다. 저자의 20년 트레킹 경험이 녹아 있는 책으로 제작에만 2년이 걸렸다.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랑탕 등 히말라야와 파미르, 톈산산맥 등 중앙아시아, 키나발루와 치앙마이 등 동남아, 북미의 로키과 남미의 안데스, 유럽의 알프스와 카프카스,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뉴질랜드의 마운트쿡과 밀포드트랙 등 트레커라면 한번쯤 가고 싶은 코스가 책에 들어있다.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의 코스도 빠뜨리지 않았다. 각 코스의 기본 개념과 그 코스를 해내는데 걸리는 일정, 하루 주파 가능 거리, 코스 지도, 고도표, 숙박 등 기본 정보에 멋진 사진을 곁들였다.
중간중간 저자의 단상과 여행기가 재미를 더한다.
낭가파르바트에서 헤르만 불, 라인홀트 메스너, 김창호 등 산악인 세 명을 떠올리는 식이다. 헤르만 불은 낭가파르바트의 경사진 빙판에서 하룻밤을 홀로 보냈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노인처럼 폭삭 늙어 버렸다.
8,000m급 14봉을 처음 오른 라인홀트 메스너는 낭가파르바트에서 동생을 잃고 환영과 환각에 휩싸였다. 김창호는 메스너 이후 35년 만에 낭가파르바트 루팔벽을 오른, 진정한 한국 산악인이었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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