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 지음·이한음 옮김/ 김영사 발행·604쪽·2만5,000원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미국 소설가 로버트 퍼시그의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무신론을 과학적 논증을 통해 증명하려는 야심찬 시도다. 그동안 과학은 사실을 다루고 종교는 가치를 다루는 것으로 분리돼 조화로운 ‘별거’를 해왔지만, 이제 이 책으로 인해 신의 존재 여부는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가설이 됐다.
이 도발적 저서의 지은이는 개체가 유전자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담은 <이기적 유전자> (1976)로 지성계에 파란을 일으킨 리처드 도킨스(66) 영국 옥스포드대 석좌교수. 이기적>
그 자신 무신론자인 저자는 신의 부정이 하나의 악으로 여겨지는 전 지구적 현상에 맞서 “무신론자의 자긍심을 일깨우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서문에 적었다.
신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고선 설명하기 어려운 생물계의 복잡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우주의 설계자가 신이라는 ‘믿음’에 투항하게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설계자 가설은 즉시 하나의 물음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설계자는 누가 설계했는가?”
오롯한 다위니언으로서 저자는 “가장 진화된 존재인 창조적 지성은 우주에서 마지막에 출현할 수밖에 없으므로 우주를 설계하는 일을 맡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자연선택을 통한 다윈의 진화만이 우주의 복잡성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론이 진화론의 강력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제 영토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 도덕의 뿌리는 종교가 아니라 유전자라고 말한다.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유전자는 생물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영향을 미침으로써 자신의 이기적 생존을 도모하기도 한다.
이타주의, 호혜주의, 평판 등은 한낱 가식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유전자의 생존전략이다. “인간은 신 없이도 충분히 도덕적일 수 있다.”
때때로 신을 경험했다는 사람들이 나타나 기도와 기적을 통한 신의 존재를 증거한다.
하지만 저자는 기도의 혜택을 받은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더 심한 합병증에 시달렸다는 2006년 4월 미국 심장학회지의 통계를 제시하며 신의 경험이 더 큰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추론한다.
영혼의 위로와 안정이 종교의 효용이라고 믿고 있지만, 종교는 인간에게 전쟁과 차별 등 더 큰 고통을 안겨줬다. 우리는 종교를 통해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종교를 통해 치유하는 모순 순환의 삶을 살아간다.
이 책에서 신은 하나의 집단 망상으로 판명되고, 저자는 신에게 ‘퇴거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망연자실해 하지는 마시라. 신이 사라진 이후의 사회는 오히려 더 희망적이란다.
왜냐하면 “신이 사라졌을 때 인간은 더욱 인간을 의지하며 본연의 가치인 사랑과 연민을 찾을 것”이고 “더욱 열정적이며 영적으로 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종교사의 논쟁들과 다양한 사례들이 시원시원하게 쏟아내는 저자의 직설화법 덕분에 쉬이 읽힌다. 원제 ‘신이라는 망상(God Delusion)’.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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