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문화재 제도 개선을 놓고 대립해온 문화재청과 고고학계의 갈등이 폭발했다.
한국고고학회장이자 문화재위원회 매장분과위원인 최병현 숭실대 교수는 27일 “문화재청이 문화재 보호가 아닌 파괴를 조장하는 방향으로 매장문화제 제도를 바꾸려는 데 항의하기 위해 문화재위원직을 사퇴했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문화재위원회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제도 개선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위원직 유지는 의미가 없다”며 “고고학회장으로서 다른 문화재위원들보다 책임이 더 크기 때문에 가장 먼저 사퇴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매장분과위원회 위원 11명도 다음주 초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면담을 갖은 뒤 전원 사퇴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문화재청과 고고학계의 갈등은 올 5월 문화재청이 ‘매장문화재 제도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개선안은 폭증하는 발굴민원을 완화하기 위해 ▦사전 문화재 지표조사가 필요한 사업대상지를 3만㎡ 이상에서 10만㎡로 확대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받아야 하는 발굴일수를 현행 100에서 200일로 늘리며 ▦1만㎡ 이하의 발굴허가권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기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한다.
이에 대해 문화재위원회를 위시한 고고학계는 “개발에 장애가 되는 매장문화재는 숫제 밀어 없애버리겠다는 발상”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행복도시ㆍ혁신도시 등 대규모 국책사업을 추진 중인 현정부의 압력을 받은 문화재청이 굴복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 교수는 “현행 3만㎡ 이상도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무수한 매장문화재가 공사과정에서 파괴되고 있는데, 축소해야 할 지표조사 대상면적을 오히려 넓혔다”고 비판했다.
또 지자체로의 발굴허가권 이양은 균형발전이라는 명목은 좋을지 모르나 선거에 휘둘리는 지자체장이 개발우선주의와 민원에서 자유롭기 힘들다는 점에서 문화재 파괴로 직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기에 감사원과 검ㆍ경까지 문화재청과 전국 300여개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에 대한 감사 및 수사에 착수하면서 고고학계의 불만은 비등했다.
수사당국은 같은 조사원과 장비를 두 곳 이상의 발굴현장에 투입해 조사비를 더 많이 타내는 ‘중복발굴’ 관행을 뿌리뽑자는 취지라고 밝히고 있지만 고고학계는 “발굴기관의 운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생겨난 관행”이라며 맞서고 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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