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에게 히말라야는 ‘동경’이다. 가장 높은 세계의 지붕을 정복하려는 꿈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가슴속에 히말라야는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신성함, 높은 이상을 향해 도전해야 하는 용기, 미지의 세상의 상징이다.
하지만 그 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히말라야는 어떤 존재일까. 그들에게 히말라야는 신성의 대상인 동시에 삶의 터전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삶 속에 자연의 일부인 식물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히말라야를 오르다 보면, 곳곳에 만들어 놓은 독특한 제단을 만날 수 있고 어디를 가나 기도문을 대신해 무엇인가를 돌리고 향을 피운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절대 자연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보면 이러한 경외감은 당연하기도 하다.
향을 만드는 종류도 다양하지만 셰르파들이 가장 중요한 종교적 예식에 사용되는 향은 ‘Dhup’라고 하는데 레스커바향나무의 줄기나 가지로 만든다. 나무 그 자체가 향이 되어 스스로를 태우며 사람의 정신은 물론 주변을 정화시키는 것이다.
히말라야 사람들은 생활의 대부분을 식물에게 의지한다. 약도, 가구도, 종이도 기구도.
네팔인들이 살(Sal)이라고 부르는 나무의 잎은 좋은 그릇이다. 야외에 나가거나 축제를 할 때면 이 살나무 잎으로 만든 그릇이 이용되는데 말하자면 일회용 접시인 셈이다. 환경오염도 없이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낭만적이고도 좋은 자연 그릇이다.
매자나무는 줄기에 가시가 많아 동물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좋은 생울타리가 된다. 이 나무는 또한 피부병을 고치는 약이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마음을 즐겁게 하는 조경수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백서향과 비슷한 다프네는 독특한 네팔 종이의 원료가 되고, 천남성과 식물들의 독성은 살충제로, 쑥들은 피부에 발라 거머리 붙는 것을 막거나 잠잘 때 바닥에 깔아 벼룩을 도망하게 하고 바닥을 청소하는데 사용하거나 향을 만드는데 쓰인다.
스펙타빌리스 전나무 열매는 암청색 염료가 되고, 대나무는 산을 오르내리며 짐을 나를 때 쓰이는 지게의 재료가 된다. 마황의 종류들은 중요한 알카로이드 에페드린의 원료로 세계의 약재시장에 팔려 나간다. 물론 민간에서 알음알음 약으로 쓰는 식물은 무수히 많다.
죽은 나뭇가지들은 따뜻하게 겨울을 나는 연료가 되고 아주 오래 전에 죽은 식물들이 만들어 놓은 이탄층은 그대로 떠서 지붕을 얹거나 마당에 깔기도 한다.
식물들은 잠시 그 산을 찾는 나그네들에게 여행의 한 상징처럼 다가서기도 하는데 이번 히말라야 원정대에겐 그 식물이 히말라야금련화(Mountain Laburnum)가 아니었나 싶다.
루크라에 첫 발을 디디면서부터 가장 먼저 눈에 띄어 산에 오르는 길목마다 나타나던, 노란 꽃이 피는 콩과 식물이다. 원정대는 비바람을 맞으며 4,000m를 눈앞에 둔 탕보체의 한 언덕 위에서 한국인이 세운 한 기념비를 찾았다.
히말라야에 목숨을 바친 영혼들을 위해 찾아간 그 구름 속 작은 기념비 앞에서 함께 머리 숙여 명복을 빌었는데 그 자리엔 이미 누군가 바친 한 묶음의 노란 꽃다발이 있었다.
바로 히말라야금련화였다.
우린 이 원정에서 또 다시 아름다운 두 영혼을 히말라야에 두고 왔다. 생각해보니 이 꽃은 우리 모두가 마음을 다해 그들에게 건넨 꽃이 되었다. 그리고 내 삶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할 식물이 되었다.
국립수목원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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