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를 치는 예술인들의 이야기라면 이제 신물이 난다. 그래서 오늘은, 묵묵히 도를 닦듯 최선의 노력을 다한 노작가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주인공은 파리 태생의 폴란드인 작가인 로만 오팔카(1931~)다.
오팔카는 1965년 바르샤바의 작업실에서 0에서 무한대에 이르는 숫자를 적는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라는 동일한 제목으로 불리는 그의 숫자 그림은, 검은색 바탕의 캔버스에 흰색 숫자를 적는 것으로 시작됐다. 언제나 캔버스의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으로 숫자를 써 내려간다.
1, 2, 3, 4, 5, 6…. 이렇게 시작된 숫자 놀음이 과연 몇에서 멈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이 이렇게 간단한 것만도 아니다.
화가는 하나의 캔버스(크기는 늘 196×135cm)가 완성될 때마다 점차 캔버스 바탕색에 1%의 흰색을 첨가해나간다는 묘한 ‘게임의 룰’을 정했다. 최근의 그림은 거의 모노톤에 가까워졌다.
애초부터 그는 흰색의 바탕에 흰색의 숫자를 적어 내려가는 ‘헛짓’의 단계에 달하기를 희망했던 것. 그러나 백색의 배경에 백색의 대단위 숫자를 적어 내려가는 일은 대단한 집중력을 요하는 ‘헛일’이다.
따라서 현명한 작가는 녹음기를 보완 장치로 사용했다. 캔버스에 숫자를 채워 넣으면서 그 숫자를 낭송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기로 기록한 것이다.
쓰기(그리기)와 함께 수행되는 낭독은 잘못된 숫자를 잡아내는 기능을 할뿐만 아니라, 그림의 속도를 일관되게 만듦으로써 화면에 감정이 배제된 일정한 톤을 부여한다.
각각의 그림이 만들어진 순간을 담은 녹음 기록은 그림을 전시할 때 함께 재생되는데, 관객을 이를 통해 그림이 제작되는 속도와 화가의 호흡 조절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하나의 캔버스가 완성될 때마다 화가는 그림을 배경으로 선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늘 같은 셔츠를 입고,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표정으로 스스로를 기록한다.
이렇게 스스로를 기록하는 것은 기록하는 자의 수행을 기록하는 재미있는 부가 작업이다. 따라서 작가는 늘 자신이 사용하는 물감과 캔버스, 세필(0호 붓), 그리고 같은 디자인의 셔츠를 고집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쓰고 남을 셔츠를 사놓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철두철미한 작가의 작업에서 돋보이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오류들이다. 녹음을 자세히 들어보면(폴란드어라서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작가가 더듬거리며 헤매는 경우가 있다.
반복적인 쓰기와 낭독에 의해 자기 최면에 빠진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단순히 피곤해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캔버스에서도 열심히 찾으면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왜 수정하지 않은 것일까.
아마도 ‘우공이산의 예술’을 펼친 그에게 실수란 최소화해야 할 무엇인 동시에 인간의 무능함을 증언하는 중요한 기록으로 간주되는 것 같다. 그의 수정 원칙은 다음과 같다:
‘만약 숫자를 잊고 잘못 쓴 경우에는 잘못을 인지한 그 때부터 다시 숫자를 쓴다. 하지만 너무 오래 지난 실수일 경우에는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
무의미한 행위에 인생을 바침으로써 의미 있는 작가가 되고, 의미 있는 작가의 그림이 다시 무의미한 백색이 되어가는 과정은 흥미롭다.
지독하리만치 완벽을 기하는 작가가 어쩔 수 없이 실수를 연발하고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교훈적이기까지 하다.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을 숫자 쓰기 작업에 바친 로만 오팔카. 최근 소식이 뜸한 것을 보면, 인생의 (무)의미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의 그림 없는 그림이 종결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임근준 미술ㆍ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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