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단체와의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는 이슬람 전문가가 없다는 이유도 한 몫하고 있다.
자체적인 정보망은 물론 이슬람 문화와 현지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 협상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장병옥 한국외대 이란어과 교수는 26일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지 못하다 보니 납치 사건 등이 일어날 때마다 속수무책 당하는 게 현실"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중동 지역 전문가를 육성하고 독자적 정보망을 구축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외교, 안보에 중동은 없다
정부의 외교ㆍ안보 라인에서 중동, 이슬람 관련 전문 인력 현황은 민망한 수준이다. 피랍 사건에 대한 핵심 대책을 세우고 현지 협상단을 지휘하는 청와대의 안보정책조정회의만 봐도 고위 인사 중 중동과 이슬람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아프간 현지 협상반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장 조중표(외시 8회) 외교통상부 제1차관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일본 및 중국 주재 대사관의 참사관 등을 지냈다.
이날 사태 해결을 위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파견된 백종천(육사 22기) 청와대 안보실장은 육사 교수 등 주로 연구 기관에서 일했지만 전문 분야가 이슬람과 거리가 멀다.
중동 국가인 요르단의 라자이 알 칸지 요르단대 교수는 "중동, 이슬람을 잘 모르는 협상 대표들이 협상에 나선다고 해서 상황이 금방 나아지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외교통상부도 중동, 이슬람 관련 인력이 절대 부족하다. 현재 중동 지역 16개 국가를 담당하는 '아프리카ㆍ중동국' 내 '중동과'는 서기관 8명이 전부다.
게다가 납치 사건이 일어난 아프가니스탄은 '아시아ㆍ태평양 국' 내 '서남아ㆍ대양주 과'에서 맡는데 담당자 1명이 호주와 아프간을 함께 관할하다 보니 사실상 호주에 무게 중심이 쏠려있다. 외교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원에는 중동 지역 연구 인력은 단 한 명뿐이다.
경찰 역시 이슬람 국가 중 인도네시아와 우즈베키스탄에 주재관을 파견할 뿐 중동 지역에는 단 한 사람의 주재관도 없다.
경제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박사급 66명을 포함해 전체 연구 인력이 110명인 삼성경제연구소에는 중동지역 연구 인력이 한 명도 없다. 연구소 관계자는 "유럽과 아시아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중동을 함께 맡고 있다"며 "그 나마 석유와 관련 있는 에너지 전공자들이라 제대로 된 지역 전문가로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홀대 받는 중동과 이슬람
전문가들은 중동과 이슬람 전문 인력이 절대 부족한 것과 관련, 정부의 정책이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등에 쏠려 있는 데서 원인을 찾고 있다.
중동과 이슬람은 홀대 받고 있다는 뜻이다. 중동이 국제 무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여전히 이슬람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탓도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부 관계자도 "외교관들부터 중동 담당으로 가면 교육 문제와 생활 여건 등을 이유로 인사에서 물을 먹었다고 생각한다"며 "누가 먼저 나서서 일을 하려고 하겠나"고 전했다.
정부가 중동, 이슬람에 무관심하다 보니 관련 학계의 연구 환경도 열악하다. 현재 관련 학회에 등록된 전문가는 200명 남짓하다. 장 교수는 "중동 전문가가 1,000명이 넘는 일본에 비해 사람 수가 턱없이 적고 정부 지원도 10분의 1 수준"이라며 "학술대회도 열고 학생도 교환하면서 교류를 하려 해도 뒷받침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 나마 있는 중동, 이슬람 전문가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장 교수는"교수들은 중동 주요 인사가 오면 사진 찍고 밥이나 먹는 얼굴 마담일 뿐"이라며 "납치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정부 관계자로부터 자문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지적했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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