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간으로 25일 밤 9시. "8명의 인질이 풀려나 미군기지로 호송되고 있다"는 보도가 한국 정부 소식통을 통해 흘러나왔다. AP통신도 서방 관리들을 인용해 "숫자를 알 수 없는 몇 명의 한국인 인질이 석방돼 가까운 미군기지로 이송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30분도 채 안 돼 인질 1명을 사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AFP와 DPA 통신 등이 "인질이 풀려났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는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주(州) 주지사의 말을 전하면서 인질 8명의 행방에 대한 억측과 추측은 난무하기 시작했다.
이들 8명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석방이 됐다가 다시 억류된 것인가. 석방하려는 시도는 있었던 것일까. 정부 당국자는 "확인할 단계가 아니다"면서 "우리 국민이 석방되면 발표할 것"이라는 '신중한' 입장만 고수했다.
이 당국자는 또 "피랍자들이 무장단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고 판단될 때 안전하게 귀환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인질 8명의 정황을 단편적이나마 유추할 수 있는 단서는 주로 일본 언론들을 통해 나왔다. 아사히(朝日) 신문은 26일 "한국인 23명이 3개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탈레반 단체에게 감시 당하고 있다"는 가즈니주 카라바흐 지역 행정책임자 '시디키'의 말을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남성 인질 1명과 여성 인질 7명을 억류한 무장단체를 관리하는 탈레반 사령관과는 고액의 몸값을 주는 조건으로 협상이 이뤄졌다.
시디키를 포함한 아프간 협상단이 25일 오후 현금뭉치를 들고 무장단체와 접촉하러 갔으나, 주위에 은밀히 배치돼 있는 치안부대를 발견하고는 "우리를 죽이려 하느냐"며 격분한 탈레반이 몸값 수령을 거부하고 인질들을 다시 은신처로 끌고 갔다는 것이다.
NHK 방송도 26일 새벽 아프간 정부 협상 담당자의 말을 빌어 "탈레반이 25일 한국인 8명을 석방하기 위해 인질 인도장소에 가던 중 급히 되돌아갔다"고 전했다.
탈레반측이 도중에 아프간 정부의 전차 등이 주변에 배치된 것을 보고 안전이 보장돼 있지 않다고 판단해 거래를 백지화했다는 것이다. 결국 8명은 석방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억류됐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8명이 우리측이 관할하는 지역에 들어오지 않았다"면서 "우리측이 관할하는 지역이라는 것은 우리와 협력하는 아프간 정부와 현지 미군, 국제 치안 동맹군 등이 관할하는 곳을 포괄하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이는 '일시적으로 석방이 됐으나 완전히 우리 관할 지역으로 넘어오지는 못했으며,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탈레반 측은 언론을 통해 석방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인질들이 세 그룹으로 나뉘어 통제되고 있다는 보도는 26일 언론에 보도된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의 메모 내용과도 일치한다. 이 메모에는 '8+6+9'라는 숫자가 적혀 있고 '8+6' 밑에는 '돈'이, '9' 밑에는 '강경'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는데, 8명과 6명을 억류하고 있는 두 단체는 '돈'을, 9명을 억류하고 있는 단체는 탈레반 동료 죄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는 유추해석이 가능하다.
납치단체가 석방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인질 살해를 감행한 배경은 이처럼 세 그룹별 납치단체의 성향이 다르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정황을 종합할 때 탈레반은 몸값을 받고 8명을 풀어줄 생각이었고, 실제 인도를 위한 행동에까지 들어갔으나 어떤 이유로 인해 이를 전격 철회한 것으로 보는 것이 현재로선 유력하다.
일부에서는 석방 절차가 완료되기 전 교도통신 등을 통해 '거액의 몸값'이 전해졌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 문제가 됐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탈레반 중앙지도부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가 "분명히 돈이 아니라 죄수 석방을 원한다"고 한 발언을 감안하면 인질을 억류하고 있는 입장에서 '돈을 받고 거래했다'는 것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달가워 할 리 없다.
실제 그 동안 다른 유럽 국가들도 자국 인질 석방을 위해 뒷돈을 줬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양측 모두 이를 부인하거나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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