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를 둘러싼 절박한 위기감이 투자자, 제작자, 감독, 스태프 등 영화인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제협)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연예산업매니지먼트협회, 투자회사 등 영화단체 대표들은 26일 서울 논현동 영동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화산업 대타협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한국영화 위기의 가장 큰 책임은 영화인 스스로에 있다는 자기반성에서 나온 것으로, ▦제작비 거품 제거 ▦스태프 처우 개선 ▦개런티와 부율(극장수입 배분율) 조정 등 각 분야의 ‘대타협’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차승재 제협 회장은 “영화계에 많은 갈등이 있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을 묻어두고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제작사(사이더스FNH) 대표인 그는 “지난해 12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올해는 7월이 돼서야 겨우 한 편을 시작했다”며 “제작비의 20% 정도를 절감, 영화판에 다시 돈이 돌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준동 부회장(나우필름 대표)도 “영화계엔 어려움이 닥쳤을 때 갈등을 넘어 머리를 맞대는 전통이 있다”며 “오늘 대타협 선언이 그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영화계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인식에는 안팎이 일치했지만, 그 원인에 대해선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의견이 갈렸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흥행과 상관 없이 막대한 개런티를 챙기는 스타 감독과 배우가 ‘공공의 적’ 1호였다. 투자자들에게는 과다한 마케팅비 등으로 가파르게 상승한 제작비와 그에 비해 부진한 흥행성적이 지갑 열기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감독들은 흥행이 될 만한 영화에만 돈을 쏟아 붓는 투기성 투자자금이 원망스러웠다. 스태프들은 살인적인 저임금 구조 아래 최소한의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했다.
이런 구조적 문제들은 상상력 고갈이라는 영화의 질적 저하와 맞물려, 결국 올 상반기 전년 대비 한국영화 관객 31.9% 감소, 점유율 14.1% 추락(영화진흥위원회 ‘2007 상반기 영화산업 결산’ 기준)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최근 대기업 계열 투자사들의 잇단 영화산업 철수설은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날 선언은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영화인 협의회 발족’(3월), 영화노사 단체교섭 합의(4월) 등에 이은 영화계 내부의 생존 노력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 타협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이 부회장은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외부에 밝힐 만한 단계는 아니다”며 이해조정이 쉽지 않음을 내비쳤다. 선언에 참여한 사람들도 입장에 따라 온도차를 드러냈다.
투자사 대표로 참석한 김주성 CJ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상품(영화)이 나왔을 때 그것이 얼마나 수익을 낼 수 있느냐가 투자자의 관점”이라며 “상품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영화계가 노력하겠다고 선언한 데 의미를 둔다”고 말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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