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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아프간서 피랍/ 기고 - 아프간을 평화로 이끌려면 그들의 가난과 기아 해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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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아프간서 피랍/ 기고 - 아프간을 평화로 이끌려면 그들의 가난과 기아 해결해야

입력
2007.07.2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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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의 눈과 귀가 아프가니스탄에 쏠려있다. 세계지도를 보면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은 러시아 중국 인도 이란 파키스탄 등에 둘러싸여 있다. 땅을 뜻하는 '스탄'과 파슈툰족을 의미하는 '아프간'이 합쳐져 나라 이름이 된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은 과거부터 열강에 시달려왔다.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몽골제국 무굴제국 등을 거쳐 20세기 후반 옛 소련에 이르기까지 외세의 야욕에 짓밟혔다. 국토 대부분이 산악과 사막이지만 지정학적으로 전략 요충지인 아프간을 차지하면 이 지역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족적 자존심이 강한 파슈툰족은 강대국들에 맞서 한번도 순순히 지배를 당한 적이 없다. 1980년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은 무자헤딘(전사)의 게릴라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철수했다. 9년 50일간의 전쟁에서 소련군 1만5,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프간 주둔 마지막 소련군 사령관이었던 보리스 그로모프 중장은 "아프간은 소련의 베트남이었다"고 술회했다. 대영제국은 1838년 병사 2만명을 동원,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괴뢰정권을 수립했다.

그러나 아프간군의 끈질긴 저항을 못이겨 1842년 철수했다. 영국군 1만3,000여명이 철수 중 험준한 산악에 매복한 아프간군의 공격에 몰살했다. 아프간의 역사는 이렇듯 저항과 불복종으로 점철된 역사이다.

아프간은 21세기 들어 또 다른 저항의 역사를 쓰고 있다. 9ㆍ11 테러 이후 미국의 공격으로 괴멸됐던 탈레반이 부활하면서 아프간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저항의 중심에는 '애꾸눈의 지도자' '얼굴 없는 통치자'라는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가 있다.

옛 아프간 왕국의 수도인 남부 칸다하르의 마드라사(이슬람 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오마르는 1994년 꿈에서 아프간에 평화를 찾아주라는 예언자 무하마드의 계시를 들었다. 자신을 따르던 젊은 학생들을 모아 탈레반을 결성한 그는 지역 군벌들을 패퇴시키며 아프간 전역을 장악했다.

극단적 이슬람 근본주의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그는 알라가 축복한 아프간을 엄격한 이슬람 율법 '샤리아'가 통제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로 만들었다. 목표는 무하마드가 이뤘던 신정일치의 초기 이슬람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었다.

아프간을 이슬람의 순수한 땅으로 만들고, 모든 이슬람 국가들을 통합한다는 것이다. 그의 꿈은 알 카에다의 우두머리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했다는 이유로 정권을 무너뜨린 미국 때문에 사라지는 듯 했다.

파키스탄과 아프간 접경 지대에 숨어 지내던 그는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무슬림들의 적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라며 지하드(성전)를 선언했다.

그는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유엔과 모든 외국 원조단체들을 이슬람의 최대의 적으로 규정했다. 탈레반은 그의 교시에 따라 자폭 테러는 물론 외국 민간인들을 납치해 인질로 삼고 외국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우리나라 군과 민간인들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마르와 탈레반의 궁극적 목적은 아프간을 성전의 나라 '지하디스탄'으로 만드는 것이다. 파슈툰족과 탈레반은 혈연과 지연, 종교로 뭉쳐져 있다. 미국은 과거 대영제국과 소련이 걸었던 실패의 길을 가고 있다. 아프간의 가난과 기아를 해결하는 것만이 아프간을 평화로 이끄는 길이다.

이장훈 국제문제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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