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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내 마음의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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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내 마음의 국도

입력
2007.07.2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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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번 국도를 찾아 나서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해 휴가철 즈음이었다. 동료들과 휴가계획을 나누다가 '내 나이 숫자의 국도나 따라 걸어볼까'라고 말을 꺼냈다. 같은 방에 있던 동료 세 명이 탄성을 지르면서 당장 하라고 부추겼다.

인터넷을 두드리니 46번 국도는 처음 바다를 본 인천에서 지금 사는 서울을 지나 어린 시절을 보낸 춘천과 내가 태어난 화천을 연결하고 있었다. 운명적인 계시 같았다.

하지만 그 해 여름휴가에 나는 46번 국도로 떠나지 못했다. 직장 다니느라 무대접이었던 고3 딸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이는 것으로 휴가를 다 보냈다. 가을에도 겨울에도 떠날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인천부터 출발한다는 계획은 서울부터로 좁혀졌고 종착지도 고성에서 화천으로, 다시 춘천으로 당겨졌다.

● 정신이 사라진 유적지 개발

12월 30일까지도 떠나지를 못했으니 국도를 따라 걸으려던 계획은 버스를 타는 것으로 바뀌었다가 31일 최종 선택된 것은 자동차였다. 마흔 다섯에 겨우 면허를 딴 자동차를 몰고 처음으로 서울을 벗어나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처음 서울을 벗어났으니 46번 국도를 따라 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남양주에서는 길을 잘못 든 김에 다산 정약용의 묘소를 찾았다. 대학 시절, 친구와 자주 오던 곳이었다. 그 때 다산의 묘소는 언덕배기 중간에 야트막하게 있었고 무덤 앞에 앉아 내려다보면 남한강 물줄기에 면한 숲 사이로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어울려 있었다.

그러나 마을은 사라지고 그곳은 거대한 유적지로 변했다. 넓은 주차장과 커다란 기념관과 육중한 기념물이 자리잡았다. 무덤 자체도 담과 묘지석이 매우 커졌다. 그 풍경은 전혀 다산스럽지 않았다. 모든 것을 거창하게 물화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21세기 대한민국스러울 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위대한 정신은 고졸한 풍경 속에 머물 수 없을까. 그렇게 밀어붙이고 갈아붙이고 거대한 구조물을 세워야만 위인을 현양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인가. 그런 정신은 얼마나 빈약한 것인가.

46번 국도를 따라가보니 국도를 따라 걸으려던 계획이야말로 무망한 것이었다. 길 옆에 인도는 수시로 끊겼다.

우리나라 도로에는 사람을 위한 길이 거의 없다. 그래서 명상을 하면서 걷고 싶은 이들은 순례자의 길을 찾아 스페인까지 간다. 외국의 그런 길이 인기라니까 사람들을 위해 있던 길섶마저 자동차에 내주었던 대한민국은 다시 돈을 처발라서 걷는 길을 따로 만든다. 그런 길이 오죽할까.

능내역에서 다산 묘소로 가는 길은 걷기 좋은 곳이었다. 지금은 거대한 주차장 덕에 차들이 묘소 가까이 몰려든다. 자녀들 손을 잡고 기념관을 다니며 한 가지라도 더 배우게 하겠다는 부모들의 소리가 시끌벅적하다.

먼 길을 땀 흘려 걸은 뒤 조촐하게 누워 있는 위대한 사상가를 묵상하는 것보다는 어서 달려가서 더 많은 가짜 유적을 눈에 담고 더 많은 자료를 베끼는 것이 교육이라고 믿는 나라는 이렇게 살아간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남보다 앞선 것이 교육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애쓰는 부모들이 안쓰럽다면 안쓰럽다.

● 인도가 없는 국도의 황망함

이런 천박함이 싫다고 모두가 산티아고로 떠날 수도 없고 외국으로 자녀를 유학 보낼 수도 없다. 한국의 체제에 맡겨진 사람들은 인도가 끊어지는 국도에서 황망할 따름이다.

올 여름에 나는 다시 46번 국도를 걸어볼 참이다. 목숨을 걸고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 한국에서는 걷는 길 하나 확보하는 것이 이토록 힘든가. 가장 약하고 힘든 사람부터 보호하는 길과 마을과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 왜 되지 않는 것일까.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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