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보호법 시행 이후 잠잠했던 비정규직들의 차별 시정 신청이 기지개를 켤 전망이다.
이달 1일 법 시행 이후 관망세를 보였던 차별 시정 신청의 첫 물꼬는 농협중앙회 경북 고령 축산물공판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19명이 터트렸다. 이들은 24일 공판장 책임자를 상대로 “정규직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연봉을 받는 등 차별을 받고 있다”며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 사건을 접수했다. 25일에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비정규직 한 명이 임금 차별 시정 신청을 냈다.
차별 시정 신청이 증가할 것으로 보는 이유는 우선 비정규직 차별의 핵심인 임금차별을 증명할 수 있는 월급날인 월말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법에서는 비정규직이 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요구하려면 법이 시행된 1일 이후부터 받은 차별 내용을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 임금 등에서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많은 비정규직들이 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받은 월급명세서를 들고 적극적으로 차별 시정 신청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또 법 시행 24일 만에 첫 차별 시정 신청자가 나오면서 그 동안 상황을 지켜보던 잠재적 신청자들도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설 전망이다.
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는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 차별시정 사건이 쇄도할 것으로 판단, 각 지역의 노동위원회에서 차별 유무를 결정할 차별시정위의 공익위원 173명을 새로 뽑는 등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25일 현재 신청 건수는 두 건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법 시행 초기에 차별 시정 신청이 거의 없는 이유에 대해 월급명세서 등 차별을 증명할 자료를 확보하는데 걸리는 시간적 문제와 함께 제도의 맹점을 꼽는다. 차별 시정 신청권은 비정규직 개인에게만 있다. 노동조합 등 노동자 조직은 신청할 자격이 없다.
비정규직 개인이 회사를 그만둘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사측을 상대로 차별 시정을 요구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일부 사용자들은 차별 시정 신청을 하려는 비정규직을 미리 파악, 신청을 못하게 회유와 협박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차별 시정을 신청할 때 비정규직 개인이 노조 등과 연계할 수 있게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회사가 정규직으로 전환해 줄 수 있다는 기대 속에 차별 시정 신청을 잠시 미뤄둔 비정규직들도 많은 것으로 관측된다. 중앙노동위 관계자는 “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 안됐고 홍보가 부족해 신청이 저조하다”며 “차별 신청 사례가 조금씩 쌓이다 보면 급속히 늘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차별 시정 신청권
한 회사에서 같은 업무를 하는데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임금과 복지혜택 등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을 경우 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7월부터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우선 시행됐고 내년 7월 100인 이상, 2009년 7월 5인 이상으로 확대 적용된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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