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인질사태를 결국 돈으로 해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얼마든 몸값을 치르고 인질들을 구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전쟁 상태의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빈발하는 외국인 납치는 겉보기에 대개 외국군 철수와 포로 석방 등을 노린 정치적 사건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인질이 풀려날 때는 정치적 타협 여부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거액 몸값을 치렀다는 뒷말이 무성하지만 공식 확인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몸값 거래를 정색하고 추궁하거나 시비하다가는 몰인정하다고 욕 먹기 십상이다.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하는 미국과 영국은 타협거부 원칙을 고수한다. 납치단체도 흔히 정치선전과 함께 이내 인질을 살해한다. 이에 비해 독일 이탈리아 등 전쟁 뒤처리를 맡은 나라는 원칙보다 인질 구명에 매달린다. 국민을 지키려는 책임감이 바탕이지만, 남의 전쟁에 끼어 든 처지에 강경 대응할 명분이 약한 점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태 발생 직후 "성의를 다하겠다"고 서둘러 타협 메시지를 보내 궁색한 처지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건설기술자 2명이 납치된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철군 요구는 단호하게 거부했으나, 몸값 거래 용의를 묻는 질문에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타협 의지를 강조했다.
■독일은 이 달초에도 아프간에서 납치된 기업인을 몸값을 주고 소리 소문 없이 구출했다. 납치단체는 애초 4만 달러를 요구했다지만 곧이듣기에는 너무 약소하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피랍 사진기자를 구하기 위해 200만 달러를 썼다. 이라크에서 납치된 독일 기술자 2명은 1,000만 달러를 몸값으로 냈다고 한다.
이처럼 정부가 은밀하게 치른 몸값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다. 이게 못마땅한 나머지, 정부 경고를 무릅쓰고 위험을 자초한 이들에게 국민 세금을 쓸 국가의 의무는 없다는 볼 멘 소리가 독일에서도 나온다.
■물론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국민을 돌봐야 하고, 해외 참전 등 국가활동 확대에 따라 부담도 커지기 마련이다. 이를 미리 헤아려 조신하게 행동하기는커녕, 진실하지도 않은 명분을 앞세워 거들먹거리며 설치고 다니는 게 우리 사회의 공통된 병폐다.
그러다 이번처럼 일이 잘못되면 흉악무도한 범죄에 무고하게 당한 것처럼 떠들지만, 외세 침탈에 시달리는 이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비하는 건 부질없다. 이런 사리를 깨닫지 못한 채 저들을 업신여긴 대가를 치른다는 각성이 절실하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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