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영화 '화려한 휴가' 제작자 유인택 감독 "광주가 숙명처럼 내 뒤를 쫓아오더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 제작자 유인택 감독 "광주가 숙명처럼 내 뒤를 쫓아오더라"

입력
2007.07.26 07:50
0 0

기획시대 유인택(51)대표, 이 사람을 보면 삶에 ‘운명’이란 게 분명 있다. 피해도 피해도 쫓아오는 것이 있는가 하면, 좇아도 좇아도 잡히지 않는 것이 있으니.

1980년대 굿판, 춤판, 마당놀이, 노래판, 연극 기획자로 ‘민중문화운동’을 주도하다 1989년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 상영 강행으로 영화에 발을 들여 놓은 지 18년.

스스로를 “영화 89학번”이라고 하는 그에게 영화 역시 처음에는 문화운동이었다. “6월 항쟁에서 넥타이부대를 보며 ‘시대가 변하는구나. 계속 문화운동을 하려면 이제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만이 아니라 시민대중을 배워야 되겠다. 그래서 문화 중심인 영화를 선택했다.”

그런 그에게 <숲속의 방> (1992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년), <이재수의 난> (1999년) 기획ㆍ 제작은 ‘어쩌다’가 아니었다. “일부러 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전태일> 도 다른 데서 시나리오까지 준비해 만들려 했었다. 그런데 숙명처럼 내게로 왔다. ‘영화는 임자가 따로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럼 25일 개봉한 <화려한 휴가> 역시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나.

“비슷하다. 5ㆍ18광주항쟁도 5ㆍ18재단이 다른 영화사에 맡겨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누군가 당연히 내가 해야만 하는 것처럼 ‘유 대표님, 이제 5ㆍ18 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라고 제안했다.

당연히 반대했다. 이유는 수백만 당사자들이 살아있고, 큰 산맥 같은 사건을 2시간에 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최소 70억원(실제는 100억원)인 제작비 투자 확보도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둘째고 무엇보다 과정에서의 고난이 뻔히 보였다. 이제 그런 마음 고생 그만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현씨가 써온 시나리오가 그를 무너뜨렸다. “깜짝 놀랐다. 이렇게 5ㆍ18의 맥을 짚어가며 재미와 감동도 줄 수 있다니! 결국 내가 5ㆍ18을 피해갈 수는 없겠구나! 운명이구나!

내 영화인생의 은퇴작이 될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방점을 찍는 건가. 그 순간 배우(안성기),협찬, 지원, 세트건설 등이 구체적으로 확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목포는 항구다> 의 김지훈 감독이 만들면 돈을 벌지는 못하겠지만 손해는 안 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운명이라고는 하지만 돈 벌 가능성도 없어 보였던 이 영화를 굳이 만든 이유는 뭔가.

“부채의식이다. 내 청춘에, 의식에 큰 영향을 준 두 사건이 있다. 바로 전태일 분신과 5ㆍ18이었다. 아직도 정치적, 지역주의 논리에 갇혀있는 5ㆍ18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를 그곳에 있던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극적인 영화를 통해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가 ‘너무 직설적이다, 품격이 없다, 시기적으로 정치적이다’라는 비판도 있다.

“5ㆍ18의 10일간을 처음 전하는 영화다. 때문에 최소한의 사실(fact)은 보여줘야 했다. 해방공간의 광주모습을 제대로 못 담은 아쉬움은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화려한 휴가> 는 상업영화다. 손익분기점인 400만명 관객을 끌어들이려면 먹물을 빼야 한다. 또 무겁고 어두운 소재일수록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유머와 코미디, 멜로가 필요하다.”

1999년 <이재수의 난> 이 폭삭 망한 후, 유인택은 사실 생각을 바꿨다. 오직 “돈”을 외치며 남들은 저급하다며 꺼리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일단 뛰어> <목포는 항구다> <돈텔파파> <애인> 같은 에로물이나 코미디를 바가지로 욕 먹어가면서도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빈손이다.

“틈새시장으로 위험은 적고 수익성은 큰 분야인데 큰 영화에 치이고, 월드컵 열기에 외면당하고. 운이 없었다. 그래도 포기 못한다. 영화를 계속하기 위한 물적 토대를 갖추기 위해서는.”

그럼 현대사 속에 뛰어들기는 이번 <화려한 휴가> 가 유인택에게 정말 마지막일까. 그런데 묘하다. “이제는 없을 것 같다”고 잘라 말하면서도 제주 4ㆍ3과 건국대 사태, 박종철과 최종길 이야기를 들먹이니. 팔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