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향> 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공포는 우리 사회 안에서도 만연해있는 어떤 정서적 실체이다. 전설의>
예를 들면 도시에 떠도는 괴담들, 전자레인지에 고양이를 넣은 할머니 이야기나 하수구에서 기어 나오는 거대한 악어 이야기들은 더러운 하수구, 끊임없이 복제 가능한 비디오 테이프, 발신자를 알 수 없는 휴대폰, 오염된 한강 등등 도시 사람들의 무의식이 서식하는 장소라면 어디든지 나타나 허연 공포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렇게 핏물로 만들어진 쓰레기통, 공포영화는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마치 악몽처럼 우리의 무의식이 원하는 욕망을 변장해서 보여준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젊은 미녀의 하얀 목덜미 깊숙이 송곳니를 꽂는 <드라큐라> 같은 영화도 중세와 빅토리아 시대에 철저히 억눌린 성적 억압이 의식의 표면으로 분출되는 행위라 해석할 수 있겠다. 드라큐라>
또한 <여고괴담> 이나 <알 포인트> 같은 영화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억압된 장소가 학교와 군대라고 은근히 속삭이는 것도 같다. 알> 여고괴담>
<가족상속괴담> 을 보고 나니, 다시 한번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는 공포영화의 공식이 떠올랐다. 대만 영화라면 늘 뉴웨이브를 떠올렸던 우리에게 이 영화는 전형적인 중화권 공포 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가족상속괴담>
12시가 지나면 기억을 상실한 채, 의문의 저택으로 돌아오는 주인공의 친구들. 이들의 뒤를 캐보니 사실 가족 번영을 위해 항아리에 죽은 태아를 가두고 가족의 피로 키우는 무서운 가족 이기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
가족의 번영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동아시아적 유교적 집단무의식이 공포영화의 자장을 타고 한국 관객의 마음속에도 너울을 펄럭인다.
특히 한 날 한 시 목매달아 죽은 가족들의 가지런한 발을 클로즈업한 장면은 뻑 하면 정육점식 난도질에 단발마의 괴성이 울려퍼지는 서양 공포영화의 ‘잔혹 쾌감’은 덜 하지만, 상대적으로 고딕한 분위기가 오싹오싹 오감을 습격하는 동양 공포영화의 모양새로는 썩 괜찮은 셈이다.
여기에 운명이 뒤바뀐 쌍둥이 이야기는 여전히 동양적 공포영화가 가부장제 하에서 신음하는 여성들의 한을 담보로 삼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항상 여름이면 드는 생각이지만, 들여다볼수록 공포영화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함의가 풍부한 장르다.
일본의 공포영화가 고양이 귀신, 인형 귀신, 비디오 귀신 등등 일반 사물도 아주 오래 사용하면 생명을 얻어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믿음을 반영한다면, <가족상속괴담> 은 정확히 유교의 자장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본다. 가족상속괴담>
그러니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귀신이 ‘씌운다’는 말을 하고, 일본괴담에서는 아예 나무나 인어 고양이 등등 자연물 그 자체가 정령이 되는 것이리라. 아무튼 삼팔반점 인육만두 이후 이렇다 할 중국괴담에 목말랐던 분들.
<가족상속괴담> 은 가족의 피를 제물 삼아 새로운 공포세상을 꿈꾸는 중국괴담의 세계로 이끌 것이다. 오래된 쇠창살의 질식할 듯한 비린내가 뚝뚝 흐르는 느린 공포의 세계로. 가족상속괴담>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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