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9년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가 계엄 상황에 대비, 반정부 인사 923명을 사찰하고 유사시 체포하는 ‘청명계획’을 수립ㆍ운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체포 대상에는 당시 통일민주당 의원이었던 노무현 대통령도 포함돼 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90년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 진상 규명 과정에서 보안사가 반정부 인사를 임의로 검거ㆍ체포하는 계획을 세웠음을 보여주는 ‘청명문서철’과 ‘청명계획카드(체포카드)’를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문서에 따르면 보안사는 89년 3월 여소야대 상황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중간평가를 유보하고 문익환 목사가 방북하면서 조성된 공안 정국을 위기로 판단, 계엄 대비 차원에서 4월 청명계획을 세우고 ‘청명 T/F’라는 전담팀을 만들었다.
이 팀은 주요 반정부 인사 923명을 AㆍBㆍC 세 등급으로 분류했는데, 계엄 목표 달성에 결정적 장애인물로 분류된 A급 인사는 노무현 대통령, 이해찬 전 총리(당시 평화민주당 의원), 임종석 의원(전대협 의장) 등 109명, 계엄 수행 장애인물로 파악한 B급 인사는 한승헌 전 감사원장, 강만길 전 상지대 총장, 박원순 변호사 등 315명, C급은 김수환 추기경, 김승훈 신부, 박형규 목사 등 499명이다.
보안사는 이들에 대해 개인별로 A4용지 5, 6쪽 분량에 인적사항과 주거환경, 예상 도주로 및 은신처, 체포조 등을 자세히 담은 ‘청명카드’를 작성했다. 노 대통령의 경우 당시 거주하던 부산 남구 남천동 아파트의 내부 구조 도면, 출퇴근 시간, 이용 차량, 동선, 자주 만나는 친구와 연락처 등이 기록돼 있다.
과거사위는 “청명팀은 89년 6월 말 해체됐지만 보안사는 이 같은 동향 파악을 ‘분석반’의 임무로 삼아 이후 ‘청수 카드’ 등 민간인 1,300여명에 대한 사찰 카드를 만들었으며, 이런 사실은 윤 일병의 폭로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한편 과거사위는 군의 미공개 자료 등을 중심으로 12ㆍ12 쿠데타와 5ㆍ17,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조사한 결과 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의 계엄군 집단 발포 이전에도 발포가 있었으며, 공수부대의 발포가 통제되지 않는 등 군 지휘계통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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