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변에선 들을 수 없던 매미 울음소리를 버스정류장에서 들었다. 곧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가 기억 났다. 요즘에야 여름엔 온갖 소리가 가득하지만, 옛 사람들은 개구리와 매미의 울음소리 밖에 더 들었을까. 개구리는 장마가 오는 것을 걱정하여, 매미는 장마가 가는 게 아쉬워 운다고 여겼다.
실제로 2주일 정도 무더위를 견디면 한낮의 매미 울음은 아침저녁 귀뚜라미 소리로 교체된다. 매미를 한선(寒蟬)이라 칭한 옛 사람의 안목이 흥미롭다. 찰 '한'에 매미 '선', 불교의 선(禪)에서 음을 땄다니 그 깊은 속내도 궁금하다.
■불가와 유가에선 매미를 귀히 여긴다. 머리는 관(冠)의 늘어진 끈 모양이니 문(文), 나무에 맺힌 이슬만 먹으니(실제는 수액을 빨아먹음) 청(淸), 벌레나 곡식을 탐하지 않으니 염(廉), 둥지나 집을 짓지 않으니 검(儉), 세상에 들고나는 시기를 지키니 신(信)이 있다 했다. 이 오덕(五德)은 군자지도(君子之道)의 상징이다.
서양에선 '흔한 곤충' 쯤으로 천하게 여겼나 보다. 토머스 엘리엇은 대표작 '황무지'에서 대지의 황량함을 강조하느라 매미를 등장시켰고, 또 다른 문인은 징징거리는 울음을 '부서진 전선주 전압기의 불쾌한 소리'로 묘사했다.
■소리는 종류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수컷이 암컷을 부를 때 보통울음, 접근한 암컷을 향한 유혹울음, 주변의 다른 수컷을 쫓기 위한 방해울음, 적에게 잡혔을 순간의 비명울음 등이 갖가지 가락과 장단을 갖췄다. 아침과 낮, 저녁의 소리도 다른데 그것은 종류에 따라 우는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매미의 '맴 맴', 쓰르라미의 '쓰르 쓰르'에서 '차와 차와' '찌을 찌을' '지잇 지잇' 등 우리말 표현이 무궁무진하다. 누군가는 '몽당숟갈로 솥의 바닥을 긁어대는 듯'하다며 짜증도 냈지만 도시 소음을 이기려는 자구책이니 매미를 탓할 순 없다.
■품위와 울음보다 역시 매미의 미학은 '기다림'이다. 유충인 굼벵이 시절 6~7년을 땅속에서 지내고 나서야 날개를 달고 나온다. 미국에는 17년이나 지하 굼벵이로 성장해 덩치가 몹시 큰 '슈퍼 매미'가 있는데, 지난 1990년 여름 중서부 지역에 수십억 마리가 나타나 큰 소동을 빚었다.
이 매미는 정확히 17년 만인 올해에 등장할 예정이어서 미국에 비상이 걸렸다 한다. 우리 나라에서 7년 이내 새로 조성된 주택가 나무에서 매미가 울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혹 '맴 맴, 쓰르 쓰르' 소리를 듣는다면 그곳 땅은 최소한 7년 동안 파헤쳐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