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경선 막바지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합동연설회가 중단되고, TV토론 일정이 불투명한 가운데 책임 논란이 무성하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 격차가 상당히 좁혀진 것이 객관적 요인이다. 이 전 시장이 안심할 수 없고, 박 전 대표가 현실적 희망을 갖게 되면서 경선전이 치열해지고, 신경이 곤두선 모습이다.
● 양극화가 잠재적 반감 일깨워
한나라당 경선 결과 예측도 더욱 어려워졌다. '범여권 단일후보'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본선 경쟁력을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현재까지는 이 전 시장의 경쟁력이 눈에 띄게 강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 상대가 결정되면 상황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더욱이 지난 두 차례의 대선 때보다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한결 높다는 관측에는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로 딱히 누가 한나라당 후보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이 없다. 두 사람의 두드러진 장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 동안의 당내 검증과 한 차례의 TV토론, 제주 합동연설회를 지켜보면서 두 사람의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은 또렷해졌다. 경선 통과 후 본선에서 본격적으로 마주칠 걸림돌이지만, 당원과 유권자들이 본선까지 감안하리란 점에서 당장 경선 통과의 걸림돌이기도 하다.
두 걸림돌은 두 사람의 오늘을 있게 한 정치적 자산에 각각 뿌리를 내리고 있어, 본질적이고도 숙명적이다. 제거할 수도, 우회할 수도 없다. 오직 당원과 유권자들의 저울에 맡길 수 있을 뿐이다.
이 전 시장은 '부자의 벽'에 맞서 있다. 그 동안 이 전 시장에 대해 제기된 의혹은 거의 모두 재산문제에 집중됐다. 그는 모든 의혹을 부인하고, 차명재산 따위는 일절 없다고 해명했지만 많은 국민의 의심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특별히 어떤 물증이나 확증적 심증에서 나온 의심이 아니다. 경선후보의 한 사람인 원희룡 의원이 "돈을 가진 사람이 권력까지 가지려는 데 대한 반감"이라고 점잖게 표현했듯, 원초적 반감에서 비롯한 색채가 짙다.
지금 이 시절에 어떻게 부자라는 사실만으로 반감을 가지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과거처럼 부자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드물어진 게 사실이다. 또 흔히 '부자' 하면 흔히 '사회적 악덕'이 연상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청부(淸富)'라는 말도 낯설지 않게 됐다.
그러나 'IMF 위기' 이후의 사회 양극화 과정에서 잠재하던 사회저층의 반감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과거처럼 내놓고 표출하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의혹'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이 전 시장의 "열심히 살다 보니" 시끄러울 일도 많게 마련이라는 발언은 반감을 부추겼다.그 못지않게 열심히 살았지만, 생활에 허덕이는 동세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그 잠재적 폭발력으로 보아 '부자의 벽'은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 고르지 못한 역사인식의 잣대
박 전 대표가 마주한 '역사의 벽'도 이에 못지 않다. 적어도 40 중반~50대 유권자들은 "5ㆍ16은 구국의 혁명"이라는 말에 경악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폭압적 정치에 대한 주관적 경험은 많이 닳았고, 공과를 나란히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기는 했지만 '구국의 혁명'이라는 평가에까지 이른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일을 나쁘게 말하기 어려운 '착한 딸'의 모습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지만, '10월 유신'에 대해서는 갑자기 말을 바꾸어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밝힌 순간 고르지 못한 역사 인식의 잣대가 돋보였다.
아무리 많은 국민이 역사적 정당성보다 경제적 성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해도, 5공의 경제적 성과에 눈이 멀어 '5ㆍ18 광주민주화 운동'을 내란이나 소요행위로 바꿀 수는 없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인 박 전 대표에게 '역사의 벽'은 날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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