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무더위 속을 시원하게 가른다. 피겨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점프, 공중회전 등이 자그마한 인라인스케이트장에서 펼쳐진다. 스케이트 날은 없지만 대신 네 바퀴가 달린 인라인을 타고 점프 후 착지를 반복한다. 오는 10월 세계인라인롤러피겨선수권대회에 도전하는 세 명의 ‘꿈나무’들이다.
흔히 인라인하면 스피드 경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국내에서 활성화되지 않았을 뿐 인라인에는 피겨를 비롯해 다양한 세부 종목이 있다. 최근엔 세계인라인하키선수권대회에서 동호인들로 이뤄진 한국 대표팀이 사상 첫 8강 진출의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인라인 피겨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인기스포츠. 스피드가 속도를 중요시 하는 반면에 피겨는 ‘아티스틱 스케이팅(Arttistic skating)’으로 불리듯 고난이도의 기술과 표현 능력이 중요시되는 종합예술이다.
현재 한국은 걸음마 수준으로 등록선수도 7, 8명에 불과하다. 스피드는 3년만 ‘반짝’ 훈련하면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데 반해 피겨는 10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본 슈즈 값만 약 130만원에 별도의 개인 레슨비와 작품비 등 고비용도 부담이다.
그런데 1987년 콜로라도 대회 이후 자취를 감췄던 한국 인라인 피겨가 20년 만에 세계 무대를 밟을 기회를 잡았다. 10월28일부터 11월10일까지 호주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특별 초청으로 참가하게 된 것.
인라인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대비한 첫 걸음이기도 하다. 개최국 중국은 인라인 중 자국이 강세를 보이는 피겨 채택을 밀고 있다. 김상훈 대한인라인롤러연맹 부회장은 “이번 세계선수권 출전은 참가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지만 향후 유학 프로그램 등을 통해 광저우 대회에선 메달권, 2014년 인천 대회에선 금메달을 노릴 생각이다”고 장기적인 청사진을 밝혔다.
이번에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정재한(양명디지털고3) 명인범(인창고3) 최우재(대성중1)는 입문한 지 각각 4개월, 8개월, 1개월 밖에 되지 않은 ‘풋내기’들. 전용연습장도 없이 따가운 뙤약볕 아래 강바람까지 불어대는 이촌지구 인라인스케이트장이 그들의 연습장이다. 하지만 열정만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매일 오전 수업만 마친 뒤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강행군이다. 대회 출전도 순수 자비 부담이다.
대부분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시작했지만 어느덧 피겨의 매력에 푹 빠졌다. 스피드에서 피겨로 전향한 정재한은 “스피드 보다 재미있다. 처음엔 친구들이 아이스피겨인 줄 알고 걱정했는데 이젠 다들 달라졌다”며 ‘피겨 전도사’를 자청했고, ‘막내’ 최우재는 “잘 때도 피겨 생각이다. 슈즈를 벗고 나면 오히려 어색하다”고 웃는다. 명인범은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시작한 피겨 덕분에 몰라보게 활달해졌다.
연맹은 87년 광주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아이라 오바나(일본)를 대표팀 코치를 영입해 한 달에 2, 3일씩 지도를 맡기고 있다. 오바나 코치는 “아직 초보 수준이지만 배우는 속도가 아주 빠르다”고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겁 없는 풋내기’들의 도전 속에서 인라인 피겨의 씨앗은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오미현 기자 mhoh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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