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로 닷새째를 맞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의 한국인 납치 사건은 조기 종결이냐 장기화냐의 기로에 서 있다. 탈레반은 “한국군 철수”에서 “포로와 인질 맞교환”으로 요구조건을 변경했고, 협상 시한도 두 차례 연장했다. 한국 정부도 직ㆍ간접 협상에 나서며 사태 해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납치범과 피랍자의 심리 상태를 분석해 봤다.
● 납치자 “메시지 선전보다 실리”
탈레반의 속내와 관련, 최우선 관심사는 과연 인질을 살해할 의도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현재로선 “최악의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행정학)는 “한때 아프간의 권력을 장악했던 세력인 탈레반은 재집권 의도가 강해 보편적 정서에 어긋나는 잔혹한 범죄 만큼은 가능한 한 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상현 동국대 명예교수(경찰행정학)와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이번 납치의 궁극적 목표가 결국 ‘금전적 보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인질로서의 가치를 유지하도록 최대한 배려할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표면적이든 아니든 포로 교환이나 금전적 보상, 정권 탈환 등 목적이 뚜렷한 상황에서 ‘살해’라는 악수(惡手)를 둬 봐야 득 될 게 없다는 실리적 판단과 기대 심리가 작용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슬람교와 개신교라는 종교ㆍ문화적 차이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김세주 연세대 의대 교수(정신과)는 “현 아프간 정부에 대한 반감이 한국인에게 ‘투사’(projectionㆍ감정 전이)될 수는 있다”면서도 “협상 진척에 따라 투사 강도는 약해진다”고 설명했다.
● 피랍자 “공포 속의 안정”
살해 위협을 받는 피랍자들은 극한의 공포에 시달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피랍된 한국인들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상태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 표창원 교수는 “같은 종교를 가진 동료들과 함께 있는 게 가장 큰 위안”이라며 “사태가 장기화해도 서로를 격려하면서 두려움과 공포,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친밀성이 불안감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인질이 납치범에 동질감을 느끼는 현상인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질 가능성도 비교적 낮다는 분석이다. 이수정 교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피랍자들도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외부 상황을 짐작할 것”이라며 “신앙심이 깊은 만큼 극도의 불안 상태에 빠지지 않고 이성을 유지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랍자 23명에 대한 분산 수용설이 사실일 경우 공포감은 커질 수 있다. 김세주 교수는 “인질들은 외부 세계, 상대방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동료의 생사도 알 수 없게 되면 자기 나름의 상상을 하게 된다”며 “납치 세력의 의도와 상관없이 종교적 차이 등을 염두에 두면서 더욱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악의 경우 공황 상태에 빠지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고 김 교수는 우려했다.
현재로선 피랍자들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은 ‘살해 위협’보다는 오히려 정보 접근이 차단된 상태에서 언제, 누구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미지의 공포’인 셈이다.
● 향후 협상 어떻게
전문가들은 향후 협상에서 “상대방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현 교수는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 탈레반을 자극하지 않을 만한 단체를 지원하며 협상을 이끌어 가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교수도 “피랍자들이 애초 ‘봉사’ 목적으로 간 만큼 납치범들에게 선교 태도를 취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이현정기자 agada20@hk.co.kr
김혜경 인턴기자(이화여대 국문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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