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반군이 한국인 인질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와의 직접 협상을 요구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탈레반 반군과의 협상은 일단 불발됐다.
아프간 정부가 부족 원로들을 내세우면서까지 반군과의 직접 협상에 나섰지만 협상 조건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그러나 부족 원로들이 막후에서 과거 군벌과의 협상을 타결한 전례가 적지 않아 이들 원로들이 갖는 영향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아프간 정부가 앞서 탈레반 무장세력과의 협상을 사실상 원로에게 일임했다는 것은 원로들의 발언이 아프간 정부보다 더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실증한다.
4월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무장세력에 붙잡힌 프랑스 여성 구호 요원 셀린 코르델리에르는 마이완드 지역의 부족 원로들의 협상으로 풀려났다.
당시 탈레반은 요원의 석방조건으로 주둔중인 프랑스군의 철수와 아프간 당국에 수감된 탈레반 무장 요원들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부족 원로들의 설득으로 대부분의 요구를 철회했다. 따라서 한국 정부 협상단도 프랑스 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탈레반과의 유일한 협상 통로인 부족 원로들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부족 원로들의 힘이 막강한 것은 각 부족들의 협조 없이는 탈레반의 생존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게릴라전을 벌이는 탈레반은 산악 지형 곳곳에 산재한 부족들의 묵인이나 음성적인 협조 없이는 식량, 물, 무기 조달 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 떠난 물고기가 존재할 수 없듯 부족의 도움 없는 탈레반은 상상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아프간 역사, 민족구성, 지형을 짚어보면 부족 원로의 막강한 권한을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프간 국토가 산악지형이어서 부족들은 고립된 채 저마다의 강한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부족들간 언어와 종족이 다양해 개별 부족들의 독자성과 응집력은 매우 공고하다.
아프간에서 사용되는 주요 언어만해도 파슈툰어(35%), 아프간페르시아어(다리어ㆍ50%) 투르크멘어(11%) 등이며 일부 부족은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종족별로도 파슈툰족 하자라족 타지크족 우즈베키족 등이 있고, 이를 세부적으로 보면 23개 종족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부족의 독립성이 매우 강할 수 밖에 없고, 부족을 이끌고 있는 원로들은 부족의 정치적 입장은 물론, 일생 생활의 규범까지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옛 소련군이 철수한 뒤 아프간을 장악했던 탈레반도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지 않고 파슈툰족의 부족회의인 ‘지르가(jirga)’와 같은 부족 지도자 회의를 통해 의사를 결정했다. 부족 원로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협상카드와 당근이 필요한 이유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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