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을 축으로 한미 간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에 느닷없이 뉴욕에서 활동하던 한국측의 '간첩'이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ㆍ기소되는 심상찮은 사건이 벌어졌다.
FBI는 18일 활발하게 대북교류사업을 벌여온 뉴욕 맨해튼의 재미동포 박일우(58ㆍ미국명 스티브 박)씨가 최근 2년 간 미국 내에서 북한 관련 정보를 한국 정부측에 알려준 혐의를 부인하는 거짓진술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 기소했다.
● 납득하기 어려운 혐의들
박씨는 다음날 법원의 인정 및 구속적부심에서 재정보증 15만달러, 현금 보석금 5,000달러로 책정된 보석조건을 맞추고 일단 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원은 전자감시장치 착용을 명하는 한편, 한국 정부 관계자와의 접촉까지 금지해 양국 정보라인 간 미묘한 긴장이 감돌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위증보다는 사건의 본질인 간첩혐의다. 기소장과 함께 제출된 수사경위서를 보면 FBI는 2005년부터 박씨에 대한 미행, 감청, 동선감시 등 집요한 추적을 통해 박씨와 한국 정보관계자들과의 연계 및 정보 제공과 관련한 금품수수 등의 정황을 수집하는 등 이번 일을 간첩사건으로 몰고 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경위서에 적시된 박씨의 혐의가 양국 정보기관 간의 긴장을 무릅쓰고까지 '간첩혐의'로 포장돼 발표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고 어색하다는 점. 적시된 혐의는 ▦ 지난 2년간 뉴욕 주재 한국 영사관 및 유엔대표부 관계자들을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이를 부인한 것 ▦전화 감청에서 박씨가 한국 관계자들에게 돈을 받았다고 주변에 시사한 것 ▦ 2005년 방북 후 북한 관계자들이 살충제와 마취제 등을 요청한 사실을 한국 관계자에게 전달한 것 등에 불과하다.
박씨는 1980년대 초 미국에 이민 온 뒤, 약 10년 전부터 매년 5, 6차례 북한을 정기적으로 방문해온 대표적 대북교류 사업가다. 최근 평양소주를 미국에 수입했고, 2002년엔 6만3,000달러 상당의 여성 블라우스를 수입해 생산지를 북한(D.P.R of Korea)으로 표기해 처음으로 미국에 판매했다.
어찌 보면 뉴욕 주재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박씨와 접촉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업무로 볼 수도 있다. 따라서 궁금한 것은 이 정도 사안을 두고 '간첩혐의'를 거론하며 사건을 대대적으로 터뜨린 FBI의 동기와 진의다.
하나의 실마리는 한미 정보기관 간의 불협화음이다. 수사경위서에는 FBI 요원이 박씨를 만나 3, 4차례 "영주권자로서 박씨는 미국 국민으로 간주된다"며 "따라서 외국 정보 관계자를 만날 경우엔 반드시 FBI에 관련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경고했던 사실이 적시돼 있다. 또 FBI 요원이 한국 정보 관계자를 만나 박씨를 만난 사실을 확인하려 했으나 사실상 일축 당했던 사실도 적고 있다.
● 한미 정보라인의 갈등?
이런 사실은 FBI가 박씨와 한국 관계자들로부터 북한 정보에 관해 일종의 따돌림을 받아왔고, 이를 경고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특히 FBI가 "미국 국민으로 간주한다"며 협조를 요청했다가, 이번 사건에선 '외국인으로서 외국정부 대리인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삼은 것은 비협조적인 박씨와 한국 정보 관계자들에게 법적으로 타격을 가할 빌미를 강구해왔다는 점을 시사한다.
뉴욕 주재 우리측 정보 관계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은 미국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대북 정보전에서 한국과 미국 정보기관 간의 갈등과 긴장 때문에 빚어졌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
뉴욕=장인철특파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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