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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프리즘] 비싼 그림, 가난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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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프리즘] 비싼 그림, 가난한 화가

입력
2007.07.2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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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생존 화가 중 그림값이 가장 비싼 화가는 천경자(83) 화백이다. 한국미술품시가감정위원회에 따르면 그의 작품은 2006년 호당(18×14㎝) 4,000만원에 거래됐다. 그러나 1980년엔 호당 가격이 20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26년새 그림값이 200배나 올랐으니 화가가 떼돈을 벌었겠구나 짐작하겠지만, 화가가 들으면 역정 낼 소리. 문학이나 영화, 음악과 달리 미술에는 작품이 재판매될 때마다 저작권자에게 돌아오는 인세 같은 권리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추급권(追及權ㆍArtist’s Resale Right)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미술계가 들썩이고 있다.

추급권은 미술작품이 재판매될 때마다 저작권자인 작가와 작가의 상속권자가 원저작자의 사후 70년까지 판매액의 일정한 몫을 받을 수 있는 권리로, 한 번 작품을 팔면 추가 수입을 기대할 수 없는 미술작가의 특수성 때문에 생겨났다. 27개 EU 회원국은 모두 도입했으나, 그밖의 국가에선 거의 적용되지 않아 미국 캘리포니아주만이 인정하고 있는 정도다.

국내에서도 추급권이 인정되면, 화랑이나 경매회사 등 전문 중개상을 통해 미술작품을 사려는 사람은 별도의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수수료는 거래액 5만유로까지는 4%, 5만~20만유로 3%, 20~35만유로 1%, 35만~50만유로 0.5%, 50만유로 초과작품은 0.25%. 최고금액은 1만2,500유로로 제한돼 있고, 3,000유로 미만 작품에는 면제된다.

당장 거래 수익의 일부를 작가에게 떼어줘야 하는 화랑과 경매회사들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전문 중개상을 통한 거래에만 적용되고, 개인간의 직접 거래나 공공미술관 판매에는 해당되지 않아 “왜 우리만”이냐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공개시장으로 나올 작품들이 음성시장으로 숨어들게 될 게 뻔하다”, “미술품의 원활한 유통과 이제 막 궤도에 오른 미술시장의 성장을 막는다면 그 피해는 작가에게 되돌아간다” 등 일리 있는 비판론도 들린다.

하지만 단 돈 몇 푼에 판 그림이 억대를 호가해도 아무런 수익을 얻을 수 없었던 작가들은 멀리서 날아든 희소식을 더없이 반기고 있다. 작가들 뿐만 아니라 미술 경매에서 연일 최고가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박수근 화백이 가난 속에 죽어갔던 부조리한 현실이 더 이상 예술적 낭만으로 미화될 순 없다는 지적이 예술계에 팽배하다.

오랜 전통을 가진 유럽과 달리 이제 막 형성되고 있는 한국의 미술시장을 보호하면서 작가의 권익도 보장할 수 있는 묘안을 짜내야 할 때다.

박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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