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손’ 이운재(수원)가 한국 축구를 살렸다. 한국 대표팀이 골키퍼 이운재의 눈부신 선방에 힘입어 ‘벼랑 끝 승부’에서 이란을 물리치고 47년만의 아시아 정상 정복 꿈을 부풀렸다.
연장전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돌입한 승부차기. 한국이 3-2로 앞선 가운데 이란의 네 번째 키커 카티비가 골문 가운데를 향해 회심의 오른발 슛을 날렸다. 들어가면 승부는 다시 원점. 때 마침 이운재도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누가 보더라도 골이 확실했다. 그러나 이운재에게는 발이 남아 있었다. 이운재는 넘어지는 상황에서도 골을 끝까지 지켜봤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가운데로 날아오던 슛을 왼발로 걷어냈다. 그것으로 한국의 ‘이란 징크스’는 말끔히 사라졌고, 베어벡 감독의 운명도 지옥에서 천당으로 바뀌었다.
핌 베어벡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2일 오후 7시 20분(이하 한국시간) 쿠알라룸푸르 부킷 잘릴경기장에서 킥오프된 2007 아시안컵 8강전에서 연장전까지 득점 없이 승부를 가리지 못했지만 ‘운명의 승부차기’에서 이운재가 두 번째와 네 번째 키커의 슈팅을 몸을 날려 막아낸 데 힘입어 4-2로 승리, 2000년 레바논 대회 이후 7년만에 준결승에 올랐다.
우승 후보간의 격돌로 관심을 집중시킨 경기였지만 한국과 이란은 120분간 헛심공방을 펼치는 지루한 승부를 연출했다. 경기에 앞서 쏟아진 폭우와 경기 내내 간헐적으로 내린 비로 질책해진 그라운드는 선수들의 발목을 잡았고 한국과 이란 모두 집중력과 골 결정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며 0의 행진이 이어졌다.
한국으로서는 전반전 좋은 분위기를 살리지 못해 경기 내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경기 초반 중앙 수비를 강화해 무거운 행보를 보인 이란을 상대로 좌우날개 염기훈과 이천수(울산)의 스피드를 앞세워 공격 주도권을 장악했지만 마무리 패스의 정확도가 떨어져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프사이드 트랩을 적절히 사용하며 이란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던 한국 수비진은 전반 막판 갑작스레 집중력이 떨어졌지만 이운재의 선방과 김진규의 육탄 수비로 두 차례 아슬아슬한 위기를 모면했다.
전반전 우세한 경기 속에서도 골사냥에 실패한 베어벡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이동국 대신 조재진(시미즈)을 투입하며 변화를 꾀했지만 전반전 ‘오버 페이스’로 체력이 떨어진 탓인지 한국 공격수들의 몸놀림은 무겁기만 했다.
베어벡 감독은 후반 32분 체력이 바닥난 염기훈 대신 최성국(성남)을, 연장전 후반 시작과 함께 손대호(성남) 대신 김두현(성남)을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웠지만 한국의 무딘 창 끝은 날이 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승부차기에서 이운재가 철벽방어를 펼친 데 이어 마지막 키커로 나선 김정우가 깨끗한 슈팅을 성공시켜 한국은 120분 혈투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은 25일 오후 7시20분 같은 장소에서 베트남을 2-0으로 격파한 이라크와 결승 진출을 다툰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는 우즈베키스탄을 2-1로 누르고 4강에 올라 일본과 격돌한다.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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