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밤의 ‘축구 콘서트’였다.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3)의 묘기 축구와 ‘악동’ 웨인 루니(23)의 잉글랜드식 파워 축구, 거기에 세계 최고의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한국 축구의 아이콘 박지성이 함께 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C서울의 친선 경기는 화끈한 공격 축구에 목말라 있는 축구팬들의 갈증을 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속담은 이날 밤만큼은 예외였다. TV 화면에서 보지 못했던 ‘숨겨진 2인치’가 모두 나오는 듯 했다. 2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고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다 관중 기록을 보유한 FC서울이 벌인 친선경기는 퍼거슨 감독이 즐겨 사용하는 ‘환상적인(fantastic)’ 그 자체였다. 전반에만 3골에 후반 1골을 보태 4-0 완승을 거두며 펼친 맨유의 ‘축구쇼’는 아시안컵 졸전으로 꽉 막힌 듯한 한국 축구팬들의 숨통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귀중한 선물이기도 했다.
TV에서만 보던 맨유의 화려한 공격축구에 경기장을 가득 메운 6만 여명의 팬들은 넋을 잃었다. 맨유 선수들도 이날은 뭔가 보여주기 위해 작정한 듯 했다. 경기 시작 전 몸풀기부터 전매특허인 헛다리 드리블을 시도한 호날두는 킥오프 휘슬이 울리자마자 축구장에서 볼 수 있는 온갖 테크닉을 다 선보였다.
두 차례의 슈팅 시도 만에 골을 뽑아내는 무시무시한 골결정력도 보였다. 호날두는 전반 5분 루니의 패스를 이어받고 툭툭 공을 차다가 그대로 대포알 같은 중거리슛으로 김병지가 지키는 FC서울의 골망을 뒤흔들었다.
호날두의 ‘원맨쇼’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전반 14분께 중앙에서 FC서울 수비진을 뒤흔들던 호날두는 수비수들의 허를 찌르는 절묘한 힐패스로 이글스의 두 번째 골을 돕더니 약 5분 뒤에는 루니에게 스루패스를 찔러 주며 쐐기골까지 이끌어냈다. 호날두의 ‘신기’에 매료된 축구팬들은 환호와 감탄사를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한국팬들에게 축구의 진수를 마음껏 보여준 호날두와 루니는 전반만 뛰고 후반에는 교체됐다. 이들을 대신해 나선 라이언 긱스(34)와 폴 스콜스(33) 역시 ‘노장 파워’를 한껏 과시하며 박지성과 팀에서 가장 친하다는 파트리스 에브라의 4번째 골을 도왔다. 이날 1골2도움을 기록한 호날두는 이청용과 함께 경기 MVP에 선정됐다.
이날 경기는 5년 전인 2002 한일월드컵을 연상시킬 만큼 뜨거운 열기가 이어졌다. 맨유의 붉은색 유니폼을 차려 입은 수 만명의 팬들은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입장하기 위해 장사진을 쳤고 맨유의 한국 공식 서포터스는 ‘MUFC’라는 대형 카드 섹션을 펼쳐 한일월드컵의 열기를 그대로 재현해 냈다.
킥오프 휘슬이 울리기 전 맨유의 리그 우승컵을 들고 박지성과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함께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자 경기장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지난 18일 방한해 ‘맨유 신드롬’을 안기며 그 위용을 유감없이 드러낸 맨유는 무더운 여름 더위를 한방에 날려버릴 시원한 축구쇼를 한국 축구팬들에게 선사했다. 일본(17일ㆍ2-2 무승부), 한국 중국으로 이어지는 아시아투어를 하고 있는 맨유는 21일 마카오로 떠나 23일 중국 프로축구 선전팀과 투어 3차전을 갖는다.
김기범 기자 kik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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