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ㆍ11 테러 이후 아프간을 침공한 미국은 탈레반을 궤멸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 전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아프간 탈환에 나선 탈레반은 지난해부터 외세를 몰아낸다며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등 다국적군에 대대적 공격을 감행해 칸다하르 등 아프간 남동부를 거의 장악했다. 아프간에는 현재 미군 1만여명과 NATO군 3만7,000명이 배치돼 탈레반을 축출하기 위한 공세를 취하고 있지만 탈레반은 오히려 갈수록 세력이 커지는 형국이다. 올 봄부터는 자살폭탄 테러와 도로매설 폭탄테러, 외국인 납치 등 다양한 게릴라 전술로 공세를 펼쳐 잡초 같은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병사와 장비 부족으로 미군과 NATO군은 최근 지상군 공격보다는 공습으로 전술을 전환했지만 이는 대규모의 아프간 민간인 희생으로 이어지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AP통신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사망자 수를 집계한 결과 탈레반 반군 때문에 숨진 민간인보다 다국적군에 희생된 민간인 숫자가 더 많았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아프간 국민의 민심이 탈레반 쪽으로 돌아서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아프간 민심이 탈레반으로 쏠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아프간 현 정부에 대한 실망이다. 2001년 탈레반을 축출한 미국은 아프간을 ‘평화와 자유의 땅’으로 만들겠다면서 야심찬 재건 계획을 발표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아프간의 빈곤율은 여전히 50%, 실업률은 40%라는 절대빈곤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프간 전역이 수년째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안전한 식수와 전기, 의료시설 등은 여전히 사치품일 뿐이다. 3,000만명 가량인 아프간 국민의 평균 수명은 43세에 불과하다.
관료조직의 만성적인 부정부패 또한 탈레반의 재기를 돕고 있다. 탈레반 정권 하에서 근절됐던 양귀비 재배가 다시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탈레반 붕괴 이후에 나타난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부패한 지방정부 관리들은 양귀비 재배를 묵인하고, 양귀비 거래대금은 탈레반 지지자들이나 부패관리와 경찰의 수중으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간다. 탈레반은 이렇게 조달한 군자금을 바탕으로 전쟁으로 피폐해진 남부 지역에 학교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권력에서 축출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민심 달래기에 신경을 써 왔다.
아프간 주재 외교관들은 “주민들이 정부에 배신감을 느낄 경우 탈레반에 우호적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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