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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달걀 세례 받은 정형근 의원

입력
2007.07.2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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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휴대폰이 열 개 가까이 된다고 한다. 권력의 그늘에서 칼자루를 휘두르다가 수평적 정권교체로 졸지에 권력의 칼날을 받는 대상으로 처지가 바뀐 상황에서 선택한 그다운 생존술이다. 그 용의주도함 덕분에 정 의원은 DJ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 수 차례 자신에게 겨눠진 칼날을 피해 큰 탈 없이 일신을 건사해왔다.

그런 그도 '내부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다. 그저께 한나라당의 새로운 대북 정책인 '한반도 평화비전'을 재향군인회에 설명하러 갔다가 보수단체 회원들이 던진 달걀에 얼굴 전체가 범벅이 된 모습은 정말 보기 민망했다.

달걀에 맞는 거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당해본 사람은 안다. 그 지독한 비린내는 웬만한 비위로는 견뎌내기 힘들다. 대량살상무기(WMD) 축에는 끼지 못하지만 대량 창피와 역겨움을 일으키니 그렇게 고약한 생물학 무기가 따로 없다.

● 공격 당한 한나라당 대북정책

이제 정 의원에게는 '달걀 방어'(Egg Defense)체제 구축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 향군 등 보수단체들은 한나라당이 '한반도 평화비전'을 정식 당론으로 채택하면 항의방문과 규탄궐기대회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이니 정 의원은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다. 인터넷에도 불이 났다.

정 의원이 과거에 용공조작에 앞장서고 대북 강경입장을 대변해 왔다고 생각하는 네티즌들은 "쌤통이다"라는 반응이 많다. 정 의원이 최근 한나라당의 전향적인 대북 정책 변화를 주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선을 위한 정략적 선택일 뿐, 진정성이 없다고 보는 탓이다. "당해 싸다"는 쪽도 만만치 않다.

주로 배신감을 느끼는 강경 보수성향의 네티즌들이다. "정형근이 빨갱이 다 됐다"는 비난에 "세상 참 많이 변했다"고 탄식하는 소리도 나온다. 그러고 보면 달걀 대신 빨간 페인트 안 던진 게 다행이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한나라당의 대북정책 변화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집권을 하지 않고 만년 야당으로 머물려면 모르지만 국가 정책을 펴나가는 책임 있는 집권당이 되면 마냥 북한에 대해서 분노하고 엄격한 상호주의만을 부르짖을 수는 없다. 그렇게 해서 남북긴장이 고조되고 갈등이 증폭되면 당장 경제에 악 영향이 온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가장 시급한 것은 경제 회생이다. 일반 국민의 기대도 그렇다. 그런데 긴장 고조로 경제회복에 독이 되고 국제 신인도를 떨어뜨릴 남북 대결의 길을 선택하겠는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이렇다 할 성장동력이 없는 상태에서 남북경제교류 활성화는 앞으로 10~20년을 먹고 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엊그제 베트남, 중동 특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도약의 기회가 올 것이라고 했는데 그 정도까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북쪽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과거 서독의 기민당은 야당 시절 서독판 포용정책인 집권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1983년 집권한 후에는 사민당보다 한술 더 뜨는 포용정책을 폈고 결국 이런 기조 위에서 독일통일을 이뤄냈다. 정 의원에게 달걀을 던진 보수단체 회원들은 "대북 상호주의와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한 대북지원 주장을 뒤집고 갑자기 배신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북한의 태도에 따라 대북지원과 대결의 냉ㆍ온탕을 오갔던 김영삼 정부 시절을 돌이켜 보면 답은 자명하다.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북송하고 '수입해서라도 보낸다'며 수십만 톤의 쌀을 지원했지만 상황이 조금만 달라지면 대결로 가는 바람에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대북정책의 철학과 지혜가 없었던 탓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해서 그러한 소모적인 냉ㆍ온탕식 상호주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대북정책을 새롭게 가다듬는 게 옳은 방향이다.

● 의구심과 배신감 극복이 과제

그 작업의 중심에 서 있는 정 의원은 진보진영으로부터는 의구심을, 보수진영으로부터는 배신감을 사고 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상당 부분 정 의원 자신의 몫이다. 하지만 이념적 배경과 정서를 떠나 국가적 차원에서 정 의원의 노력이 성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가 다시 달걀 공격을 받는다면 프라이팬이라도 들고 나가 막아주고 싶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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