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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만리장성은 '?' 다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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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만리장성은 '?' 다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

입력
2007.07.2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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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로벨 지음·김병화 옮김 웅진지식하우스발행·524쪽·1만8,000원

중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무엇일까. 명ㆍ청 시대 황제가 살았던 베이징의 화려한 자금성이나, 상하이 황푸강변에 우뚝 솟은 동방명주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만리장성을 제쳐놓고 중국의 이미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 ‘세계 7대 불가사의’ 같은 수식어를 빼더라도 길이 4,000km에 달한다는 이 장대한 인공구조물의 위대함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았다.

“만리장성은 아시아 전체의 길이보다 더 길다”고 말했던 멀리 17세기 예수회 선교사들이나 “이 위대한 업적에 비하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그저 어린애 장난같은 쓸데없는 돌무더기”라고 극찬했던 계몽철학자 볼테르, 외교적 발언일지언정 “장성은 위대한 성벽(Great Wall)이며, 위대한 민족이라야 이것을 세울 수 있다”고 말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까지 일일이 손꼽을 수 없을 정도다.

만리장성은 이러한 상찬에 걸맞은, 중국인들의 자부심의 상징이 될 수 있는가.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원으로 중국사 전문가인 줄리아 로벨은 만리장성 축성 과정의 역사적 맥락을 더듬어가며 그 물음에 답한다.

지은이는 만리장성을 ‘야만족에 대항하기 위한 성벽’ 이라고 주장했던 역대 왕조들의 주장을 반박하며 반론에 나선다. 축성사업에 나섰던 역대 중국 왕조들은 그것을 방어용이라고 주장했지만 장성은 실제로 그들은 팽창주의적 성격을 명백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어떤 지점에서 성벽은 오늘날 몽골 안쪽의 초원지대까지 들어가 있으며 농경지와 주요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경우도 많다.

장성은 또한 민중을 보호하기보다는 통제하고 착취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축성사업을 전개했던 진나라의 경우 엄격한 법가주의적 체제와 충돌한 지식인, 민중들을 건설사업에 동원했다.

성벽이 일종의 ‘강제노동 수용소’ 였다는 것. 장성은 또한 민중의 노동력에 대한 수탈을 상징한다.

성벽 건축에 동원된 남편을 찾으러 나섰다가 수천명의 다른 노동자과 함께 묻혀있는 남편의 뼈를 발견하고 자결한 맹강녀(孟姜女)의 전설이 널리 퍼져있듯, 현대 중국의 정치가들이 만리장성을 ‘민족주의의 마스코트’로 이용하기 시작한 20세기 이전까지 이 성벽은 중국 민중들에게 ‘고통과 수탈’ 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었다.

그러나 저자가 이 책에서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는 만리장성은 중국인들의 자민족 중심주의, 그리고 폐쇄주의적ㆍ전제주의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라는 점이다. 한족과 흉노족, 한족과 몽골족 등 중국의 왕조사를 살피면 알 수 있듯 만리장성은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갈등에서 파생된 산물이다.

그러나 역사는 중원을 차지한 ‘성벽 안쪽’의 왕조는 그것이 한족이건 비한족이건 예외없이 ‘성벽 바깥’ 외부 침입자와의 타협이나 외교적 노력 대신 폐쇄정책ㆍ고립정책으로 일관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지은이는 만리장성이 상징하는 중국인의 폐쇄성은 현대에도 인터넷 ‘방화벽’의 형태로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중국 당국은 인터넷의 정보통제 해제능력을 두려워해 수많은 관료주의적 금지조항을 설정했다.

경제적 자유는 허용했을지언정 정치적 자유는 용납할 수 없다는 의도다. 저자는 중국인들이 그 억압을 분출하는 방식이 ‘반외세 민족주의’로 흐르는 현상을 현실적인 위협으로 본다.

2001년 봄 미국의 첩보기가 중국 전투기와 충돌하자 중국의 해커들이 백악관 역사 웹페이지 위에 중국 국기 그림을 그려놓았듯 세계 어디서나 가장 개인적인 해커들의 공동체마저 중국에서는 열정적으로 애국적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역사를 관찰해 보건대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가두는 마음의 감옥인 ‘만리장성’ 을 무너뜨릴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결론내린다.

중국의 부상에 공포심을 느끼고 그들의 한계와 결점을 찾으려는 서구 지식인의 시각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그러나 저자의 결론에 동의하든 않든 책을 읽고 나면 ‘일어서라,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자여. 우리의 피와 살로 새 만리장성을 건설하자’로 시작하는 중국의 국가(國歌)가 분명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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