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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옛뜰' 예순 넘어 고스란히 풀어낸 세월의 저편, 그 시대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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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옛뜰' 예순 넘어 고스란히 풀어낸 세월의 저편, 그 시대 초상

입력
2007.07.2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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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혜 지음 / 문학사상사 발행·300쪽·1만원

1999년 쉰넷의 나이로 소설가에 등단한 이후 성지혜씨는 창작의 원(願)을 맘껏 풀어내고 있다. 5편의 중단편을 묶어낸 <옛뜰> 은 그의 여섯 번째 단행본이자 두 번째 소설집이다.

소설가 이동하씨는 “(진주 양반가 출신의) 그만한 가문과 연륜과 미의식이 아니고는 결코 복원해낼 수 없는, 이제는 향수처럼 아득한 세월 저쪽의 세계”라고 수록 작품의 특질을 짚어낸다.

연작으로 봐도 무방한 <무늬> <근보 선생의 일생> <손에 뜬 달> 에서 작가는 병약한 명문가 출신의 외동딸 ‘나’를 화자로 삼는다. 주인공을 작가의 분신으로 여겨도 무방한데, 작품 내용이 이 책의 서문을 비롯한 성씨의 자전적 기록과 많이 겹치기 때문이다.

셋 중 앞의 두 단편은 40, 50년대 전통적 공동체의 풍경을 그린다. 작가가 묘사한 당시의 생활상과 하위 문화는 미시사의 고증 작업을 연상케 할 정도로 정교하다.

하지만 풍경을 이루는 화소(畵素) 중 가장 빛나는 부분은 ‘나’의 진중한 관찰로 되살아난 인물들이다. 반상 구별, 가부장제가 온존하는 사회에서도 퇴기(退妓), 종갓집 며느리, 백수 한학자 등 전근대적 인물들이 발하는 매력과 기품은 인간에 대한 작가의 도타운 신뢰를 방증한다.

6ㆍ25전쟁이란 비극적 역사에서도 “내 딸래미도 너처럼 코피를 잘 흘린다며 나를 껴안고 눈물을”(<근보 선생의 일생> ) 흘리는 인민군의 마음씨만이 오롯하다.

표제작은 전작 장편 <은가락지를 찾아서> (2006)처럼 골동품상을 소재로 한다. 전국의 골동품 가게와 박물관을 순례하는 일을 낙으로 삼아온 작가는 30년 체험에 바탕한 구성진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중편 분량과 전지적 시점으로 네 단편과 차별을 이루는 이 작품 역시 사람이 중심이다.

작가를 빼닮은 ‘누리’가 인사동, 황학동, 장한평의 골동품점을 들를 때마다 가게 주인들은 심중에 감춰뒀던 저마다의 사연을 토로한다. 기서결(起敍結)의 틀에서 놓여난, 질펀한 인용구들의 배열 만으로도 작가는 주목할 만한 형식미를 일궈낸다.

전통적 작법에 충실한 <오동나무 아래서> 에서 ‘나’를 비롯한 고향 친구들은 신산스러운 삶을 마감한 재일동포 동창 ‘미선’의 수목장을 치른다.

오랜만에 한데 모인 옛 친구 사이를 가로막았던 어색함과 갈등은 함께 미선을 추억하는 동안에 멀찌감치 물러선다.

작가가 “과거의 늪에 던진 이야기의 그물”(문학평론가 김종회)은 자족적인 추억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옛뜰은 바로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는 삶의 그루터기”라는 작가의 설명과도 일맥상통한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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