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글·이담 그림 / 보리 발행·48쪽·9,800원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고요한 봄밤. 치악산 깊은 골짜기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찢어진 인민군복을 입은 오푼돌이 아저씨와 무명솜옷을 입은 아홉살 곰이가 고향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앵두나무가 함박꽃을 피우던 함경도 고향집을 그리며 곰이가 한숨짓자 오푼돌이 아저씨는 친구들과 헤엄치며 놀던 대동강변에서의 추억이 떠올라 눈가가 뜨거워진다.
고향을 떠난 지 벌써 삼십 년이 넘었지만 이들은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
<곰이와 오푼돌이> 는 치악산 전투에서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총알을 맞고 숨진 오푼돌이 아저씨와 피난길에 폭격을 맞아 숨진 곰이의 영혼이 나누는 대화로 구성돼있는 단편동화다. 곰이와>
“인민을 위해 싸운 건데, 죽은 건 모두가 가엾은 인민 뿐이었어” 라는 오푼돌이 아저씨의 독백이나 “전쟁을 피해 달아났는데도 전쟁은 우리 뒤를 따라온 거예요”라는 곰이의 외침은 영문도 모른 채 전쟁의 희생자가 돼야 했던 이들의 억울한 심정을 대변한다.
서로 싸우다가 두 마리 호랑이에 물려간 오누이를 다룬 동화 속 동화는 외세를 등에 업고 상대를 굴복시키려 했던 어리석은 민족사를 상징한다.
지난해 5월 세상을 떠난 <몽실언니> 의 작가 권정생(1937~2007) 선생이 1980년대초 발표했던 동화를 이담의 사실주의적 삽화를 곁들여 다시 펴낸 책이다. 등장인물의 이름만 살펴봐도 평화와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고인의 뜻을 새길 수 있다. 몽실언니>
두 체제가 아무리 잘난 척해도 통일 전까지는 허리 잘린 반푼이밖에 안된다는 뜻에서 ‘오푼돌이’라는 이름을, 통일을 위해서는 곰처럼 우직하고 순박한 심성을 지녀야 한다는 뜻에서 ‘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동화책은 어린이들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보여주려는 보리출판사의 ‘평화 시리즈’ 첫 권이다. 앞으로 정신대 할머니, 베트남전, 이라크전 이야기들이 소재로 다뤄질 예정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요즘 서울시내 초등학생의 40% 정도가 6ㆍ25를 모른다고 한다.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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