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철학대회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1900년부터 5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전 세계 수천명의 학자가 참가하는 최대 규모의 철학 학술행사. ‘철학 올림픽’으로 불린다.
내년 7월30일~8월5일 서울대에서 개최되는 22차 대회에는 알랭 바디우(프랑스), 비토리오 회슬레(독일), 티모시 윌리암슨(영국), 쥬디스 버틀러(미국) 등 저명 철학자를 위시해 150여개국에서 3,000명 이상이 참가할 예정이다.
한국철학회 산하 한국조직위원회(위원장 이명현)는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행사 계획과 준비상황을 발표했다.
■ 아시아 첫 '철학 올림픽'
이번 대회는 유럽, 미국을 벗어나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역대 대회 중 비 구미지역 개최국은 멕시코(1963), 러시아(1993), 터키(2003) 밖에 없었다. 80년대초부터 대회 유치를 준비해오던 한국 철학계는 2003년 이스탄불대회 국제철학연맹 총회에서 ‘철학의 고향’ 그리스 아테네를 누르고 개최지로 선정됐다.
이는 영미 분석철학과 유럽 대륙철학의 강세 속에서 철학이 아닌 사상, 즉 지나간 시대의 사유쯤으로 취급받던 동양철학의 복권으로 해석될 만하다. 이명현 위원장은 “세계화ㆍ다문화 시대에 전 세계 철학자가 한국에 모인다는 것은 문명사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조직위는 이런 취지를 살리기 위해 한국 및 동양 철학 관련 발표를 대거 마련했다. ‘동양과 서양의 관점’ ‘한국의 철학’ 심포지엄, 분과 발표에도 유교철학 불교철학 도가철학 부문을 신설했다.
각 분과 발표시 1명이던 좌장도 동ㆍ서양 학자 2명에게 맡긴다.
북한 철학자들을 초청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이삼열 한국철학회장은 “구두 초청 의사를 이미 전달했고, 8월 북한 교육당국에 정식 초청장을 전달할 계획”이라며 “북한이 이전 대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만큼 초청에 응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저명 철학자 대거 참여
내년 대회 주제는 ‘오늘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Rethinking Philosophy Today). 강진호 조직위 사무차장은 “영어로 보면 ‘오늘의 철학을 생각한다’와 ‘철학을 오늘날 다시 생각한다’는 중의적 의미를 담은 주제”라며 “세계화, 탈중심화, 과학기술 발전 등 세계가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는 가운데 철학의 근본적 의미와 현대철학의 나아갈 바를 모색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대회 학술행사는 크게 초청강연과 분과 발표로 나뉜다. 초청 강연은 전체 강연(4개 세션), 심포지엄(5개 세션), 기금 강연(3개 강연)으로 구성된다.
대회의 얼굴인 전체 강연에는 심리철학 대가인 재미 학자 김재권씨를 비롯, 프랑스 철학계를 선도하는 알랭 바디우와 뤽 페리, 일본의 저명 미학자ㆍ윤리학자인 이마미치 도모노부, 중국 철학자 렝 롱이 참석한다.
세계화, 생명, 환경 등 현안에 대해 철학적 입장을 밝히는 심포지엄에는 미국 페미니즘의 기수 쥬디스 버틀러, 독일 철학계의 신성 비토리오 회슬레가 나선다.
‘21세기판 니체’로 불리는 독일 철학자 피터 슬로터다이크는 기조강연 연사로 나설 예정이다. 영미 분석철학의 대표적 학자 티모시 윌리암슨도 별도 초청강연에 응했다.
김기현 조직위 사무총장은 “90년대 이후 토머스 쿤, 윌리엄 반 오만 콰인, 자크 라캉, 미셸 푸코와 같은 대가들이 잇달아 사망하면서 철학계는 자연스럽게 세대 교체가 진행되는 중”이라며 “가능한 저명 철학자 초청강연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초청강연이 시의성 있는 주제에 집중한다면 분과 발표는 학술대회 본연의 입장에 충실하게 진행된다. 수리철학, 논리학, 존재론, 형이상학 등 54개 분과에서 6명씩 참석하는 400개 세션이 예정돼 있다.
이밖에 3개국 이상의 철학자들이 공통 관심사에 의견을 나누는 라운드테이블, 미래 철학계를 짊어질 젊은 대학원생들이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학생 세션’도 열린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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