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일상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머리를 상쾌하게 만드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사람들은 일생의 로망으로 멋진 여행을 떠올린다. 그 꿈은 타이타닉호 같은 호화 크루즈에서의 파티나 아프리카 초원에서의 사파리, 메마른 사막에서 만나는 별이 쏟아지는 밤 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유럽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로망중 하나가 ‘블루트레인(Blue Train)’이다. 남아공의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와 케이프타운을 잇는 호화열차다. 아프리카 대초원을 관통하는 1,600km 되는 거리를 평균 시속 90km의 속도로 1박2일, 27시간에 걸쳐 운행하는 ‘달리는 특급 호텔’이다.
아프리카에 놓여진 철길은 제국주의 욕망의 상징이다. 검은 대륙의 심장부에서 금과 다이아몬드가 쏟아져 나오자 제국주의자들은 내륙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철길을 놓았다. 원주민들은 그 철길을 질주하는 열차를 ‘강철뱀’이라 부르며 두려움에 떨었다. 유럽인들이 블루트레인에 거는 환상의 한 자락엔 지난 날 제국주의의 향수가 담겨 있을 것이다.
블루트레인 요금은 비싸다. 1인당 성수기(9~10월) 160만원대, 비수기(11~8월) 130만원대.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만만치 않은 액수다.
비싼 값을 하는 블루트레인의 감동은 열차역에서부터 시작된다. 공항의 항공사 라운지처럼 전용라운지를 따로 갖추고 있다. 체크인을 하면 ‘버틀러’라고 불리는 담당 승무원이 무거운 짐을 객실로 옮겨 놓는다. 시종을 자처하는 그들의 서비스는 헌신적이다. 손님은 그 시간 편안한 소파에 앉아 간단한 간식을 곁들여 차를 마시며 블루트레인 여정의 설렘을 즐기면 된다.
블루트레인의 객차는 모두 18량. 객차 하나 당 3~4개의 객실이 있다. 길이 4m, 폭 2m의 객실에는 전용 샤워부스와 화장실이 갖춰져 있다. 원목의 객실 옷장에는 호텔처럼 하얀 가운이 걸려있고, 옷장 위에 설치된 TV는 다양한 영화와 함께 비행기 항로안내처럼 열차의 현재 위치를 보여준다.
드디어 열차가 케이프타운역을 출발했다. 객실의 넓은 차창은 마치 영화 필름처럼 남아공의 자연과 그곳이 터전인 삶의 모습을 그려낸다. 테이블마운틴의 웅장한 자태가 사라지면서 허름한 판자집이 끝없이 이어지더니, 이젠 광활한 포도밭과 목장을 지나 관목만 휑뎅그렁한 사바나초원이 펼쳐진다.
객실의 창 밖 풍경이 지루해질 무렵 바(bar)가 있는 클럽라운지 객차로 향했다. 블루트레인에는 객실객차 외에 식당객차 1개와 금연라운지객차와 흡연이 가능한 클럽라운지 객차가 딸려있다.
클럽라운지에선 쿠바산 고급 시가를 피워가며 맘껏 와인과 칵테일, 맥주 등을 즐길 수 있다. 요금에 다 포함된 서비스라 추가 부담할 필요가 없다. 차창 밖 아프리카 초원을 바라보며 일행과 블루트레인의 추억을 만들어가다 보니 어느덧 땅거미가 드리워졌다.
저녁 식사에는 정장이 필수. 양복을 걸친 후 식당으로 가니 샴페인과 고급 와인이 곁들여진 풀코스 정찬이 준비돼 있다. 승무원의 친절한 서비스 속에서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객실은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칸으로 변신했다. 그새 벽면에 숨어있던 매트리스가 내려져 소파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열차의 규칙적인 진동을 요람 삼아 꿈속으로 곤하게 빠져들었다.
다음날 열차는 킴벌리 인근의 붉은 홍학이 떼를 지어 서식하는 넓은 호수를 지나 종착역인 프리토리아로 향했다. 야생의 땅, 사바나 초원을 차창에 달고서.
■ 여행수첩
블루트레인의 노선은 프리토리아-빅토리아 폭포, 케이프타운-포트 엘리자베스 등 4개 노선이 있지만 현재는 케이프타운-프리토리아 왕복 노선만 월 3∼4회 운행한다. 블루트레인 홈페이지(www.bluetrain.co.za)를 통해 예약이 가능하다.
남반구에 위치한 남아공의 계절은 한국과 반대. 겨울철인 7∼9월 기온은 2∼16도로 우리의 초가을 날씨다. 시간은 한국보다 7시간 늦다.
인천공항과 남아공을 연결하는 직항편은 없다. 홍콩에서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까지 남아프리카 항공(02-775-4697)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남아프리카 항공은 스타얼라이언스 회원사로 아시아나 항공의 마일리지로 적립 가능하다. 인천-홍콩 3시간40분, 홍콩-요하네스버그 13시간, 요하네스버그-케이프타운 2시간10분.
아프리카 전문 여행사인 인터아프리카(www.interafrica.co.kr)는 프리토리아에서 블루트레인을 타고 케이프타운에 도착한 뒤 희망봉과 펭귄 서식지, 물개섬, 테이블마운틴 등을 둘러보는 8일 일정의 여행상품을 선보였다. 요금은 349만원. 블루트레인 대신 엔타베니에서 2박3일간 사파리를 즐기고 케이프타운을 둘러보는 허니문 상품(8일)의 가격은 299만원이다. (02)775-7756
케이프타운(남아공)=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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