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대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미야모토 겐지(宮本顯治ㆍ사진) 전 일본 공산당 의장의 죽음이 일본 정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소련 중국 공산주의로부터의 자주독립과 평화혁명 노선을 확립하는 등 전후 일본 공산당의 기틀을 구축한 그에게 “적이지만 훌륭했다”(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는 등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
그러나 공산당 내에서는 그의 죽음이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위원장_이치다 다다요시(市田 忠義) 서기국장 체제로 세대교체를 단행한 당의 노선에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미야모토의 직계 후계자였던 후와 데쓰조(不破哲三) 시대부터 본격화한 일본 공산당의 유연ㆍ현실화 노선은 앞으로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본 공산당은 2000년대에 들어 한층 극적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2004년 당 강령을 대대적으로 뜯어 고침으로써 정권을 잡을 수 있는 ‘보통 정당’임을 호소하고 있다.
새로운 정강은 궁극적인 목표인 ‘사회주의적 혁명’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자위대와 천황제를 용인하는 등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미야모토 정강’의 핵심 중 하나였던 ‘미국제국주의’와 ‘일본독점자본’ 등 ‘2개의 적’에 대한 표현도 없어졌다.
대외적 행보도 활발하다. 시이 위원장이 지난해 9월 일본 공산당 대표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과의 교류를 추진한 지 10년 만에 성사된 그의 방한은 ‘보통 정당’인 일본 공산당을 내외에 알리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담겨 있다.
76년 복수정당제와 정권교체, 언론자유를 인정하는 ‘자유와 민주주의 선언’을 채택하며 북한 등 주변의 공산당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일본 공산당은 역사문제 등에서 한국과 통하는 점이 많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의 대응은 소극적인 편이다.
이 같은 변신은 혁명노선이 대중에게 외면 받으면서 추락한 일본 공산당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1922년 창당되고 45년 합법화한 일본 공산당은 현재 정당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한때 50만명에 가까운 당원이 활동했던 이 정당은 국가의 정당교부금 제도가 위헌이라며 거부하는 등 독특한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당의 정치자금은 대부분 신문 아카하타의 구독료 등 당 사업비와 당원 회비, 개인 헌금 등으로 충당되고 있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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