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청문회, 면죄부 청문회의 우려가 많았던 검증청문회였다. 우려했던 대로 중복질문이나 봐주기성 질문으로 맥이 빠지기도 했다. 너무나 뻔해 보이는 사실에 대해서도 부인과 변명으로 일관해 답답함을 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청문회는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사법적 판단을 위한 청문회는 실체적인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지도자를 선택하기 위한 검증 청문회는 실체적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답변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적인 면모를 바탕으로 그들이 구사하게 될 리더십의 장ㆍ단점을 가늠해 보는 것이다.
공약이 유권자와 대표자가 맺는 계약서임에 분명하지만, 이 계약서가 글자 하나하나 그대로 지켜진다고 해도 그 안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때문에 각 후보의 삶에 서 드러나는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박근혜 전 대표의 담담한 답변을 통해 영욕이 교차하는 삶 속에서도 스스로를 잘 다스리며 살아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평생을 통해 사심 없는 삶과 공적인 활동을 해왔듯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키를 잡는다고 해도 권력욕에 취해서, 혹은 경험부족으로 대한민국을 어지럽게 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확신만큼 우려도 들었다.
가장 큰 것은 아버지의 그늘이 너무 크고 깊다는 것이다.‘친척을 엄격하게 관리했던 아버지가 최태민의 의혹이 사실이었다면 그냥 두었을 리 없다’는 요지의 발언 속에서 그가 과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가 시작됐다면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다’는 발언에서 우려는 절정에 달했다. 과거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서 미래의 방향을 바로 잡을 수는 없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두 번째 우려는 박 전 대표가 사람을 넓게 접하고 직접 챙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육영재단의 운영에서 2인자가 전횡을 실제로 했든지, 아니면 했다는 인상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게 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박 전 대표의 당 운영에서도 나타났다. 자신의 계파를 만들거나 당 사람들을 직접 챙기지는 않았다.
이는 사당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던 한나라당이 민주화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행정부는 다를 수 있다. 우리 정치사를 통해 보아왔던 ‘小통령’에서 ‘代통령’에 이르기까지 2인자의 전횡은 직접 모든 사람을 챙기지 않고 신뢰하는 몇몇에게 너무 많은 접근권을 준 데서 시작됐다.
오후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차례였다. 고학생에서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 되기까지, 또 서울시장으로서 청계천의 신화를 낳기까지 파죽지세의 성공은 국민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샌드위치 경제론, 노령화 사회, 양극화가 한국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의 장점은 더 빛나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전 시장 역시 적지 않은 우려를 낳은 게 사실이다.
첫째는 법의식이 오늘과 다른 시절, 그가 남들보다 특별히 나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합법적인 수단만으로 그 정도의 회사운영 실적을 내고, 재산증식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게 다수의 인식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관련 증인의 확인서를 받아 온다고 해도 이런 인식을 바꾸기는 어렵다.
다수국민의 인식이 이러하다면 헌법을 수호하는 것은 물론 법을 집행해야 하는 위치에서, 기업에게 준법적 경영을 요구해야 하는 위치에서, 무엇보다도 서민에게 주택정책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위치에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둘째는 ‘그때는 공직에 있게 될지 몰랐다는’ 말처럼 삶을 통해 공적인 삶을 위한 고민과 수신제가의 시절이 너무 짧았다는 점이다. 공적부문에도 사적부문의 효율성과 추진력이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전세계적인 움직임이지만, 사적영역과 달리 공적영역에서는 도덕성과 공공성이 중요하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사적인 삶에서는 욕망을 강력하게 추구해 나가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 될 수 있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욕망을 누르지 못하면 공직자 자신은 물론, 국가 전체가 불행해 질 수 있다.
본보 대선보도 자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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