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아이폰(iPhone)이 성공을 거둔다면 최대의 희생자는 제품 디자이너들이 될 것이다.”
삼성자동차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정리해고를 당한 아픈 경험이 있는 ‘어둠의 디자이너’ 잭슨 홍이 애플의 아이폰 출시에 열광하는 디자이너들에게 던진 쓰디쓴 일갈이다(오늘 나는 이 글을 통해 그의 가르침을 여러분께 전파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언론이 아이폰을 ‘디자인의 승리’라고 치켜세우는 마당에 이게 무슨 망언이냐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승리하는 것은 ‘스크린의 욕망’과 스티브 잡스의 ‘구루(Guru)-마케팅’일 뿐, 21세기 디자인의 미래는 한층 어두워지는 중이다. 적어도 ‘디자이너’란 직업의 미래는 아주 암울해졌다.
아이폰과 아이팟(iPod)의 충성스런 소비자들에겐 듣기 싫은 소리겠지만, 이 물건들은 제품 디자인이랄 것도 없는 미니멀한 형태의 ‘덩어리’에 불과하다. 만약 그 모양이 정녕 아름답다면, 당신은 세수할 때마다 비누의 형태에 감탄해야 마땅하고, 고무 지우개의 외관에도 매혹돼야 옳다.
자, 전원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한 번 보기 바란다. 아이폰과 아이팟은 모서리가 부드럽게 처리된 육면체에 불과하다. 전면이 스크린인 척하기 위해 이음새가 없는 것처럼 디자인된 이 제품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산업디자이너가 요구되는 수준의 오브제가 결코 아니다.
수준급의 산업디자인이 요구되는 대표적 오브제라면, 단연 자동차 등의 운송수단, 그리고 최근의 예로는 ‘하드키’ 타입(그러니까 진짜 버튼을 달고 있는)의 휴대폰 따위를 꼽을 수 있겠다. 자동차 디자이너들이나 휴대폰 디자이너들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모더니스트의 경구를 믿건 안 믿건, 물질적 인터페이스의 영역에 합리성을 구현하고자 애써왔다.
허나 유감스럽게도 이제 그들의 권역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최근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물질적 인터페이스가 스크린 너머의 유저-인터페이스 영역에 흡수됐기 때문이다(그에 비례해 유저-인터페이스 디자이너들의 권한이 커졌나 하면, 그렇지도 않다).
본디 제품 디자이너란 직업은 예술가(공예가)와 엔지니어를 한데 섞은 신종 전문직의 하나였다. 20세기 초에는 분명히 그랬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된 제품들이 미적으로 저열한 양상을 띠자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은 타개책 마련에 나섰다. 그래서 예술과 엔지니어링이란 상이한 지식과 능력을 한데 갖춘 신종 직업을 고안했고, 그것이 산업디자이너의 출현과 현대 디자인 교육기관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직능이 채 100년을 버티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제품 디자이너에게 남은 마지막 카드는 ‘스타일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부의 스타 디자이너에게만 허락되는 영역이라는 점이 문제다.
앙드레 김이 스타일링한 냉장고나 프라다 로고로 무장한 LG휴대폰, 아니면 얼마 전 삼성이 세계적 디자이너 제스퍼 모리슨을 영입한 사례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겠다. 그러니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면 앙드레 김이나 미우치아 프라다, 혹은 제스퍼 모리슨 같은 인물이 될 수 있어요”라고 가르친다면, 그건 ‘교육 사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무명의 제품 디자이너들이 ‘스크린 파괴운동’ 같은 일을 벌이지 않으니 이상하다. 아이폰을 리뷰하는 기사들은 종종 ‘터칭하는 것이 믿는 것이다(Touching is Believing)’라는 스크린 시대의 경구를 인용한다. 그에 내가 덧붙일 말은 하나다. “경고: 함부로 믿으면 큰 코 다쳐요.”
미술ㆍ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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