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술사는 1968년 김원룡의 <한국미술사> (범문사 발행)에 의해 최초로 체계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다. 한국의 미술사가 학술적으로 탐구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서였다. 한국미술사>
하지만 세키노 다다시의 <조선미술사> 같은 경우 한국 미술을 자율성이 없는 중국 미술의 부속물로 보는가하면, 통일신라 때 전성기를 맞은 후 쇠퇴한 것으로 파악했다. 해방 이후 김용준의 <조선미술대요> 등 식민사관에서 벗어난 미술사 서적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전문적인 학술서로 보기는 힘들었다. 조선미술대요> 조선미술사>
이런 점에서 <한국미술사> 는 전문 미술사가가 식민사관에서 벗어난 한국인의 시각으로 현대적 연구방법을 도입해 우리 미술사 전체를 조망한 최초의 책이다. 한국미술사학의 준거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간 40년이 된 지금까지도 한국미술사 강의의 기본적인 교재로 쓰일 만큼 생명력이 길다. 한국미술사>
한국 고고학과 미술사학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김원룡은 미국 뉴욕대에서 신라 토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시절인 1968년 쓴 이 책은 한국 미술의 특성을 시대적으로 배열하는 서술 방식을 취한다.
선사시대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으로 시대 구분을 한 뒤 각 시대의 미술을 조각, 회화, 공예, 건축 등 장르별로 구분해 서술했다. 주관적 입장을 배제한 철저한 객관적 시각에서 각 장르의 대표적 작품을 통해 양식적 특징과 역사적 의의, 시대적 변천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조은정 한남대 겸임교수는 <한국미술사> 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에 대해 ▲한국미술을 대하는 기본에 충실한 점 ▲시대를 배경으로 미술 작품을 들여다보는 시각으로 사회사적 입장에서 미술품의 생산과 유통을 바라보는 발전적 시각을 제시한 점 ▲민속의 영역으로 분류돼버릴 수 있는 가면이나 공예품, 능묘석물까지 포함시켜 미술사의 연구 영역을 확대했다는 점을 꼽았다. 한국미술사>
이 책은 김원룡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제자인 안휘준이 공동 저자로 참여하면서 부족한 부분이 보완되고, 새로운 발견이 추가될 수 있었다. 1973년 증보판이 나온 뒤 시간이 흐르면서 절판 위기에 놓인 <한국미술사> 를 안타깝게 여긴 김원룡은 안휘준(당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에게 공동 집필로 새롭게 책을 낼 것을 제안했다. 선사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는 김원룡, 발해 고려 조선은 안휘준이 맡는 방식이었다. 한국미술사>
5년에 걸친 작업 끝에 1993년 <신판 한국미술사> (서울대출판부 발행)가 나왔다. 김원룡은 머리말에서 “ <한국미술사> 를 절판해 버리지 않고 다시 2인 공저의 신판으로 엮어서 내놓는 것은 한국미술사의 이해와 연구의 출발점이 될 입문서적 개설서의 필요를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미술사> 신판>
<신판 한국미술사> 는 초판에는 빠져있던 발해시대의 미술을 한국 미술사로 편입시켰다. 또 회화사 전공인 안휘준의 가세로 고고학적 성격이 짙었던 초판에 비해 회화 부분이 대폭 강화됐다. 무려 480점의 도록도 추가됐다. 신판>
폐암으로 투병하면서도 이 책의 집필에 열정을 쏟았던 김원룡은 책 출간 5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타계 10주년인 2003년, 이 책은 안휘준에 의해 <한국미술의 역사> (시공사 발행)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한국미술의>
역시 김원룡, 안휘준이 공저자였다. 이 책은 1993년판에 간단하게 개괄만 했던 발해 미술을 다른 시대와 마찬가지로 회화, 조각, 공예, 건축 등으로 세분화해 완전히 독립시켰다. 신라에 포함돼있던 가야 미술에도 동등한 지위를 부여했다.
백제금동향로 등 새롭게 발견된 연구 성과를 추가했고, 중국의 것으로 기록했던 안악3호분을 고구려 고분으로 수정하는 등 잘못된 부분은 과감하게 고쳤다. 한문투 문장을 한글화하고, 모든 도판을 컬러로 게재해 젊은 세대와 일반인의 접근을 쉽게 한 것도 특징이다. 이 책은 벌써 8쇄를 찍었고, 1만부가 넘게 팔렸다.
<한국미술의 역사> 를 기획한 홍선표 한국미술연구소 소장은 “이 책은 명실공히 한국미술사의 결정판이자 근현대 미술사학의 정수”라고 말했다. 그는 “방대한 분야를 역사적으로 꿰뚫고 있는 저자에 의해서만 나올 수 있는 책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책의 출간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미술의>
홍 소장은 또 “세상을 떠난 스승의 업적을 공동의 이름으로 계승, 발전시켰다는 점도 큰 미덕”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미술사학회장 한정희 홍익대 교수는 “초판의 경우 고고학적 측면이 강했고 고대에 비해 후대의 미술에 대한 서술이 약한 편이었는데, 수 차례의 개정 작업을 통해 모든 시대가 균형을 갖췄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현재진형형인 한국의 미술사를 이 책이 조선시대까지 한정杉募?점에 대해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안휘준은 “미술사는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 성과가 나오는 분야이기 때문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새롭게 쓰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20세기 미술의 성과가 워낙 방대해 이 책의 양식에 맞추기도 힘들고, 나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회화에 대해서는 정리 작업을 하고 있지만 다른 분야는 후배들이 이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안휘준 인터뷰“공동 저자는 꿈에도 생각못해 학문 계승 좋은 예 된건 기뻐”
안휘준은 스승 김원룡으로부터 <한국미술사> 의 개정 작업 제안을 받았던 20년 전을 떠올리며 "공동 저자로 이름이 들어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저 스승을 도와드린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 책은 미술사학계 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망라된 것이지, 결코 두 사람만의 업적이 아닙니다. 다만 학문 계승의 좋은 예가 됐다는 점에서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미술사>
1961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1회로 입학해 김원룡의 지도를 받았던 안휘준은 스승과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6ㆍ25 때문에 남들보다 학교를 2년 늦게 다니는 바람에 고고인류학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안휘준은 생전의 스승에 대해 "세속적 욕심이 없는 순수하고 소탈한 분이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을 할 만큼 죽음에 대해 초연했다"고 회상했다
. "제가 맡은 부분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해주셨지요. 새롭게 쓴 발해시대 미술의 경우 하나도 지적을 하지 않으셨어요. 초판의 조선시대 개관이 다소 부정적이니 다시 쓰고 싶다고 했을 때도 흔쾌히 받아들이셨습니다."
김원룡은 고고학자, 미술사학자였을 뿐 아니라 빼어난 수필가이자 문인화가이기도 했다. 안휘준은 "스승의 달필을 많이 남기고 싶은 욕심에 <신판 한국미술사> 가 나온 뒤 투병 중이신 스승께 100권이 넘는 책에 사인을 부탁드렸다"면서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신판>
지난해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정년퇴임하고 명지대 석좌교수,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작게 접은 메모지 하나를 늘 갖고 다닌다. 거기에는 <미술사로 본 한국의 현대미술> <이야기 한국미술사> <미대생을 위한 한국미술사> 등 앞으로 자신이 쓰리라 작정하고 있는 책 13권의 제목이 또박또박 적혀있다. 등 영문서도 포함돼있다. 미대생을> 이야기> 미술사로>
그는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는 미술사 개설서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초보자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중요치 않다는 생각 때문인지 주를 다는 작업 등 기본적인 면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개설서는 그 학문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종합적인 입문서이자 지침서가 돼야 합니다. 결코 학술적 접근을 경시하면 안됩니다. 학자는 대중을 선도해야지, 대중을 핑계로 하향평준화가 돼서는 곤란하지요."
저자 연보
▲ 김원룡
1922년 평북 태천 출생
1945년 경성제대 사학과 졸업
1957년 미국 뉴욕대 미술사 박사
1962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1970년 국립중앙박물관장
1981년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1985년 서울대 대학원장
1993년 별세
저서 <신라토기 연구> <한국고고학개설> <한국미의 탐구> 등 한국미의> 한국고고학개설> 신라토기>
▲ 안휘준
1940년 충북 진천 출생
1967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졸업
1974년 미국 하버드대 미술사 박사
1974년 홍익대 미대 교수
1983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1990년 한국미술사학회장
2005년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2006년 명지대 석좌교수
저서 <한국회화사> <한국회화의 전통> <한국의 미술과 문화> 등 한국의> 한국회화의> 한국회화사>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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