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의 손자로서 고기(생선)에 대해 주워들은 몇 가지 지식(?) 가운데 하나다. 수많은 고기 가운데 좀 천박한 것들의 이름은 '치'자로 끝난다. 갈치 쥐치 꽁치 멸치 등. 다른 고기들처럼 플랑크톤 같은 것만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육식을 즐긴다. 해양 사고를 당한 시신을 인양하자면 이들 '치'자 고기들이 많이 붙어 있다.
맛이야 그만이지만 이들은 우아하고 경건해야 하는 젯상에는 오르지 못한다. 성깔이 몹시 강퍅하여 그물이나 낚시에 걸려 뱃전에 끌려 올려지면 제 분을 못 이겨 지레 나부대다 금세 죽어버려 산 채로 보관하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 '치'자 고기들은 횟감으로 맛보기가 쉽지 않았다. 뱃전에서 죽어버리는 놈들을 횟집은커녕 포구까지 싱싱하게 운반하기도 어려웠다. 갈치 꽁치 멸치 등을 날로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오직 할아버지를 따라 현장에 나갔을 때 뿐이었다. 최근 소형 어선에까지 급속 냉동 장치들이 실리면서 내륙에서도 뱃전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천박하지 않은 고기에는 '어(魚)'자를 붙여 준다. 귀한 민어에서 흔한 고등어까지 모두 젯상에 오를 자격이 있다. '넙적하고 천박한 고기' 넙치는 맛으로 인간의 사랑을 받아 '광어(廣魚)'란 이름을 얻었다.
■넙치를 30시간 정도 동면(冬眠)케 하고 다시 깨우는 기술이 세계 최초로 실행됐다. 한국해양연구원이 개발한 '겨울잠 재우기'란 넙치를 잡아 주변 온도를 서서히 낮추면 겨울이 온 줄 알고 동면을 시작하고, 원래 온도로 서서히 높여주면 '아, 봄이 왔나'하며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대단한 기술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과학은 성질 더러운 넙치까지 속여먹을 수 있게 됐다. 동물 중 파충류나 포유류, 심지어 식물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면하는 것들이 많다. 먹이가 적어지는 시기엔 체력소모를 최소화하여 수명을 연장하는 장수 비법이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넙치가 원래의 영양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지 걱정이다. 먹이 섭취를 않고 몸에 축적된 영양분을 곶감 빼먹듯 하며 견디는 게 동면이다.
곰은 동면 전후 20~30%의 체중 차이가 나고, '가을 뱀은 몸에 좋지만, 봄 뱀은 배만 부르다'는 말도 있다. 스스로 겨울잠을 계획하고 미리 포식을 하는 데도 그러니, 준비 없이 잡힌 넙치가 억지 동면을 당하며 얼마나 많은 영양분이 사라질까.
이번 기술은 인간 생체리듬 조절이나 가사상태의 수술 등에 훌륭한 전기가 될 것이다. 마치 광어회를 위한 연구인 양 알려지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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