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건호 등/한길사여운형과 '해전사'의 기억, '책의 시대' 80년대의 상징
1947년 7월 19일 독립운동가, 해방공간의 정치지도자였던 여운형이 테러리스트 한지근에게 총격당해 61세로 숨졌다. 이후 30년 넘게 그는 ‘건준(建準)’ 혹은 좌우합작이라는 단어와 함께 교과서에 한두 줄로 나올 뿐인 이름이었다.
고(故) 이병주의 장편소설 <산하> 를 탐독하면서 어렴풋이 여운형의 행적을 짐작해보던 기자가 그를 본격적으로 다룬 글을 처음 읽은 것은, 고교를 졸업하던 날 선물로 받은 두 권의 책, <해방전후사의 인식> 과 고(故)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중 앞 책에 실린 ‘8ㆍ15를 전후한 여운형의 정치활동’(필자 이동화)이었다고 기억한다. 민족경제론> 해방전후사의> 산하>
그렇게 1980년대가 오기까지도 여운형을 포함한 해방전후사는 금기의 영역이었다. 1979년 10월에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 도 곧이은 10ㆍ26과 서울의봄 시기를 거치면서 판금됐다. 하지만 이 책은 ‘해전사’로 불리면서 분단과 독재라는 상황을 되비쳐주고, 그 극복을 위한 사회운동을 상징하는 그 무엇이 됐다. 해방전후사의>
이 책을 기획한 김언호(한길사 대표)가 최근 한 인터넷매체에 쓴 회고. “1980년대는 책의 시대였다. 폭력적인 권위주의 권력과 대응하는 출판문화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 엄혹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젊은이들은 책을 읽었다… 인문사회과학적 독서를 통해 스스로의 정신과 이론과 사상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그 80년대의 한가운데에 <해방전후사의 인식> 이 있었다.” 해방전후사의>
그런 시절을 거쳐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까지 지낸 여운형의 딸 여연구(1927~1996)가 쓴 전기 <나의 아버지 여운형> 도 국내출간(2001)됐고, 여운형은 2005년에야 건국훈장이 추서됐다. 그 전에 해전사로 상징되는 책의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나의>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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