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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전 대사의 한중수교 비망록] <9> 수교교섭의 틀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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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전 대사의 한중수교 비망록] <9> 수교교섭의 틀 세우기

입력
2007.07.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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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5월7일 나와 신정승 과장, 단 두 명으로 실무준비팀을 단출하게 꾸리고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비밀아지트는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의 안기부 안가였다. 드디어 ‘동해사업(東海事業)’의 닻이 오른 것이다. 베이징(北京) 제1차 예비회담 일정은 5월14, 15일 이틀간으로 확정된 상황이었다. 회담까지 불과 일주일을 앞두고 겨우 준비팀이 차려진 것이다. 이 무렵 언론의 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병으로 가장하고 휴직계를 냈던 신 과장은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으로 발령나 있었다.

수교 교섭과 관련한 업무처리계통도 최대한 축소됐다. 외무부 본부에선 이 장관과 김석우 아주국장, 청와대에선 김종휘 외교안보수석비서관, 베이징에선 노재원 한국무역대표부 대사와 김하중 참사관으로 엄격히 제한됐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때도 외무부에는 유능한 직업외교관들이 많이 양성되어 포진해 있었다. 김석우 국장은 김영삼 대통령시절 의전수석비서관과 통일부 차관, 국회의장 비서실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국가발전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김하중 참사관은 아주국장, 청와대 외교안보비서관을 역임하고 현재 주중국대사로 있다. 신정승 과장도 아주국장과 주뉴질랜드 대사를 거쳐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협상대표단도 잘 준비된, 최고 수준의 중국 전문가들이었다.

회담 개시 일주일을 앞두고 교섭을 위한 기본자료와 제1차 예비회담 대책, 대표 기조연설과 발언요지, 의제 등을 정리하고 중국측의 예상문제와 우리측이 제기할 문제를 선정해야 했다. 특히 수교의 기본원칙 등 작성해야 할 필수적인 문서만 해도 엄청났다. 그 외에도 중국에 관한 기본자료, 중국과 수교한 다른 나라의 수교합의서, 무엇보다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대만과의 관계 재설정 및 대만재산의 처리 사례 등 조사업무와 각종 면담기록을 읽고 우리 입장을 정리해야 했다. 이처럼 방대한 자료조사와 문서작업 또한 비밀유지를 위해 신 과장과 김 국장 그리고 나, 이 세 사람의 몫이었다.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하며 우리는 중국 출장 하루 전인 5월11일 ‘동해사업 제1차 예비회담 대책안’을 완성했다. 제1차 회담의 기본목적은 한중수교에 대한 양측의 기본입장을 타진하는데 두었다. 양국이 길게는 약 1세기(1910년 일제의 강점이후), 짧게는 40여년(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수립이후) 동안 지속해온 비정상적인 관계를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정상적인 수준으로 비약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비록 ‘전제조건 없는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이라는 대전제가 서 있었지만 1차 회담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속셈과 의도를 파악하고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전초전의 성격이 짙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회담에 임하는 기본자세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 조기수교를 목표로 하되 ▦중국도 우리 못지않게 수교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판단, 의연한 자세를 견지한다 ▦교섭을 서두르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대처한다 ▦상호신뢰 구축에 주안점을 두고 불필요한 논쟁은 자제한다 ▦절대보안을 유지하며 회담을 진행한다 등 4가지였다.

기본방향은 ▦수교문제에 대한 중국측 입장과 진의파악 ▦우리측 주요 관심사항은 가능한 한 최대수준으로 제시 ▦중국측 제기사항에 대해 기초적인 선에서 대응 등 세 가지로 대별했다.

중국측의 예상문제도 정리했다. 즉 중국은 ▦하나의 중국 수용 및 대만과의 단교 요구 ▦주한대만대사관 재산의 중국 승계 요구 ▦수교의 기본원칙으로 평화공존 5원칙 제시 등을 제기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래서 이에 대해 우리도 내부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설정해놓았다.

우리가 협상테이블에 내 놓을 사안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중국의 지지 ▦한중정상회담 개최 ▦정부간 협정체결교섭의 조기개시 ▦차기회담 개최 등 4가지로 대별할 수 있었다.

‘동해사업 제1차 예비회담 대책안’이 마련된 이날 이상옥 장관, K차장, 김종휘 외교안보수석 3인이 준비팀을 찾아와 우리가 준비한 모든 자료와 서류에 대해 검토하고 결정을 내렸다. 그 날 우리 대표단 6명이 처음으로 만나 상견례를 했다.

베이징 1차 예비회담을 앞두고 양측은 대표단 명단을 교환했다. 한국대표단은 예비회담 수석대표 겸 본회담 차석대표인 나를 비롯해 변종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국제안보비서관, 한영택 외교안보연구원 수석연구관, 김하중 참사관, 신정승 연구관, 이영백 외무부 사무관(통역) 등 6명이었다.

중국대표단은 장루이지에 수석대표를 포함해 리빈(李濱) 외교부 아주사(司) 조선처장(아주국 한국과장), 탄징(譚靜) 아주사 1등 서기관, 띵쯔?(丁志壯) 대만사무판공실 부처장(부과장), 싱하이밍(刑海明) 조선처 직원(통역) 등 5명으로 구성됐다.

한중청소년문화협회(미래숲)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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