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기억은 어떤 색깔일까.
어른이 되는 아픈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한 두 편의 영화가 개봉한다. 대만영화 <영원한 여름> (감독 레스티 첸)과 독일영화 <알래스카> (감독 에스터 그로넨보른). 두 작품은 회화적 느낌의 미장센으로 젊음의 단면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그려낸다. 알래스카> 영원한>
하지만 영화 속 청춘의 색은 찬란한 햇살과는 거리가 멀다. 끝 모를 깊이의 바닥으로 침잠하는, 명도와 채도가 매우 낮은 모노 톤이다. 일상은 감옥 같고, 세상이 온통 벽으로만 느껴지던 시절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습기를 머금은 검푸른빛 <영원한 여름>영원한>
바다와 접한 대만의 한 초등학교 자연시간. 선생님이 별에 대해 설명한다. “태양계의 행성은 늘 항성 주위를 돌아요. 그런데 혜성이 나타나면, 놀라운 일이 벌어져요.”
‘행성’이라는 뜻의 정싱(장예가)과 ‘항성’을 의미하는 샤우헝(장효전)은 초등학교 때부터 동창이다. 선생님은 모범생 정싱에게 말썽꾸리기 샤우헝의 친구가 돼 줄 것을 부탁한다. 정싱은 반장의 의무감에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의 말을 따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샤우헝에게 진짜 우정, 아니 어쩌면 우정 이상의 것을 느끼게 된다. 대학에 들어갈 무렵, 둘 사이에 ‘혜성’을 뜻하는 여자 후이지아(양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셋은 숨 막힐 듯 길고 뜨거운 여름의 터널을 지나게 된다.
스물 일곱 살인 감독은 퀴어영화와 성장영화의 틀을 동시에 갖춘 이 작품에 놀랍도록 신선한 숨결을 불어 넣는다. 세 젊음이 떠도는 공간에는 해질녘 이내와 같은 어슴푸레한 푸른빛이 감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꼭 찍고 싶었던 내 청춘의 기록”이라는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1인칭의 자기고백 또는 비밀일기 같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파도 치는 복잡한 감성을 명징하게 그려낸 감독의 솜씨가 일품이다. 8월 2일 개봉. 15세관람가.
메마르고 거친 세피아톤 <알래스카>알래스카>
도시 변두리의 황량한 공간은 독일에서도 비행청소년들의 해방구다. 욕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대화와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는 마리화나, 지루하게 반복되는 섹스. 이 영화는 언뜻 장선우 감독의 <나쁜영화> 를 닮았다.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신인 배우만으로 찍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나쁜영화>
하지만 영화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직설적이고 거친 언어 대신, 몽환적 느낌의 뮤직비디오 같은 은유적 화법을 택했다. 고감도 필름으로 찍은 사진같이 거칠고 입자가 큰 화면이 이어진다. 그리고 감독은 그 화면에서 컬러의 느낌을 대부분 탈색시켜 버렸다.
세피아톤의 단색 공간은, 인생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떠도는 젊음에 잘 어울린다. 우발적인 살인과 엄습해 오는 불안감, 어처구니 없게도 그 속에서 시작되는 첫사랑의 감정은 차가운 알래스카 평원에 피어 오르는 신기루 같다. “길을 잃으면 이 송유관을 따라가. 알래스카에서도 그렇게 한대.”
초점 없는 말들과 무심히 흔들리는 카메라, 배경에 흐르는 막시밀리안 해커의 감성적인 음악은 영화가 끝나고 시간이 좀 흐른 뒤 머리 속에서 맴돌기 시작한다. 성장의 아픔도 그렇게 흐르는 시간과 함께 추억이 되는 것이 아닐까. 19일 개봉. 15세관람가.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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