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시를 대표하는 종합주가지수(KOSPI)가 거침없이 2,000 고지를 향해 달려가면서 주식시장이 은행, 저축은행, 부동산 등 다른 분야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증시 블랙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7일 한국은행과 증권선물거래소 등에 따르면 증시 투자 대기 자금인 고객예탁금은 5월말 현재 13조1,759억원으로 지난해 말 8조4,489억원에서 4조7,270원(5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은행의 요구불예금은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로의 대규모 자금이동으로 오히려 9조7,864억원이 감소했다.
또 지난해 12월 한달 동안 1조3,685억원이나 증가했던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올해 5월에는 고작 2,474억원 증가에 그쳐 증가 규모가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특히 저금리시대 서민들의 주요 목돈마련 통로였던 110여 개 저축은행의 예금 잔액은 5월말 46조5,802억원으로 전달보다 885억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저축은행의 월별 수신이 감소한 것은 저금리시대가 본격화한 1999년 4월 이후 8년 1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처럼 시중 자금이 증시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당국의 강력한 규제 속에 부동산 시장의 전망이 불투명해진 데다, 증시의 초강세가 지속되면서 저축과 투자간의 수익률 격차가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5월 예금은행의 저축성 수신 가중평균 금리(신규 취급액 기준)는 연 4.86%로 2001년 9월 연 4.9% 이후 5년8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자소득에 대한 세금(세율 15.4%) 0.75%와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 2.3%을 감안할 경우 실질이자는 여전히 연 1.81%에 불과한 실정이다. 1,000만원을 은행에 예금하면 실질 이자수익은 연간 18만1,000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반면 종합주가지수는 4월말 1,542.24에서 5월말 1,700.91로 한달 만에 10.3%가 올랐다.
만일 주가지수를 따르는 인덱스펀드에 가입했다면 수수료 약 1.5%를 제하더라도 한달 만에 은행에 1년 동안 맡긴 이자수익의 10배 가까운 투자이익을 올릴 수 있었던 셈이다.
시중은행보다 1% 정도 많은 예금이자를 제공하는 것이 주요 경쟁력이었던 저축은행은 최근 은행들의 예금금리 인상과 증시 호황 사이에 끼어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저축은행과 일반은행의 예금 금리 격차는 지난해 연말 1.18%포인트에서 5월 현재 0.69%포인트로 줄어들었다.
반면 증시에는 뭉칫돈이 몰려들고 있다. 7월 들어 13일까지 한번 주식매수에 1억원 이상 거액을 투자하는 주문 건수가 하루 평균 1만4,615건으로, 지난 1월의 4,390건에 비해 3.3배로 늘어났다. 주식형 펀드에도 하루 평균 4,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한 증권사 직원은 "최근 한 투자자가 은행에 예치했던 50억원 중 15억원을 주식 투자자금으로 맡겼다"며 "과거 증시로 들어오는 돈은 단기 고수익을 노리는 성격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최근에는 부동산ㆍ예금ㆍ증권투자로 자산을 적절히 배분하려는 자금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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