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17일 자국 외교관 4명을 추방한 영국에 대해 모스크바 주재 영국 외교관의 추방을 포함한 맞대응 조치를 취할 뜻을 시사해 이번 사태가 양국간 외교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러시아 외교부는 이날 “영국의 외교관 추방과 비자발급 간소화를 위한 협상 중단에 따른 러시아의 ’목표가 정해진‘ 대응을 조만간 준비하겠다”고 발표했다.
외교부는 이어 “우리의 조치는 적절한 것이며, 영국 정부에 곧 통보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러시아 외무부는 “영국 추방 조치는 비도덕적이고 도발적”이라며 “양국 관계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가 영국 외교관 추방이란 맞대응을 선택할 경우 양국 관계는 냉전 이래 최악의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양국은 1996년에도 외교관 추방으로 갈등을 빚었으나, 지금의 양국관계는 1970년대 이래 가장 악화돼 있다고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 측은 우려했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러시아의 대응은 예상보다 수위가 낮은 것으로 평가돼, 사태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영국은 16일 런던에서 독살당한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의 살해용의자인 안드레이 루고보이의 신병인도가 거부되자 러시아 외교관 4명을 추방하고, 추가로 양국 간 주요협상의 중단까지 준비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사건의 심각성에 대한 명백하고 적절한 신호를 보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영국은 모두 연방보안부(FSB) 요원 출신인 리트비넨코가 루고보이에 의해 방사성 물질 폴로늄 210에 중독돼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양국 관계는 영국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비판 인사들을 호의적으로 대하면서 불씨를 안고 있었다. 영국은 기소된 반 푸틴 인사인 러시아 재벌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망명을 받아들여 신병인도를 거부하고 있으며, 아흐메드 자카예프 등 체첸 반군 지도자의 망명도 허용했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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