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이틀(2days in Paris)이라는 좋은 원제를 놔두고 왜 하필<뉴욕 남자, 파리 여자> 도 아니고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여자> 였을까? 제목을 찬찬히 살펴 보니 영락 없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여자> 버전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개명이 이해가 가긴 간다. 화성에서> 뉴욕에서> 뉴욕>
프랑스 여자와 미국 남자의 문화적 충돌과 식어가는 열정의 끝자락에서 벌이는 옥신각신의 싸움이 마치 서로 다른 행성에서 이주해 온 듯, 통 섞일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극적인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싸움을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만은 아닐 터. 로맨틱 코미디의 날개를 달고서, 뉴욕에서 온 남자와 파리에서 온 여자만 사랑에 빠지나. 우주 비행사와 여권논자, 변호사와 의사, 원수가문의 두 남녀, 그리고 갑부와 창녀도 사랑에 빠지는 걸.
사실 닳고 닳은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 안에서 이 영화가 특별한 점이 있다면 감독 각본 제작 편집 음악 모두 여배우 줄리 델 피가 해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
녀의 감독 데뷔에 주변의 지인들과 가족들까지 열렬히 응원하기로 마음 먹은 듯, 연기자 출신의 실제 어머니(마리필렛), 아버지(알버트 델피) 또한 부모 역할로 나오고, 떠오르는 독일배우 다니엘 브롤이 채식주의자 요정 역할도 해준다.
이태리 콘돔보다 더 작은 프랑스 콘돔 때문에 옥신각신하는 두 남녀, 헤어진 옛 애인들과 자유분방하게 만남을 지속하는 프랑스 여자와 그것에 전전긍긍하는 미국 남자, 토끼고기 요리에 벌어진 입을 못 다무는 남자는 당근을 받아 들며“토끼 고기와 토끼 먹이까지 모두 먹는다”고 뼈 있는 농을 던진다.
이 영화에는 프랑스 사람들이 미국사람들에 대해 갖는 은근한 문화적 자부심과 파리인 특유의 드센 자존심이 미국 문화와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세세한 각개 전투가 소상하게 펼쳐져 있다.
프랑스 작가 랭보를 미국식으로 람보라고 발언하자 기겁을 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표정 안에는 왜 맥도날드 햄버거 점원조차 영어 한마디 못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지점이 골고루 들어 있다. 게다가 줄리 델피 자신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죄다 깨버리는 전략은 같은 여자로써, 통쾌하다 못해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얼추 마흔을 바라보는 이 아가씨는 스타카토 같은 성적 농담으로 서슴없이 기존의 음란함을 두 남녀의 밀고 당기는 흥미로운 필로 우 토크로 바꾸어 버린다. 게다가 뉴욕 남자를 압도하는 당당한 파리젠느의 기질은 굳이 여성주의란 말을 붙일 것 없이 당차고 씩씩하다.
그러고 보니 낯선 유럽의 도시에서 만 하루 동안 줄창 수다를 달고 사는 두 남녀의 모습은 자신이 각본을 썼던 <비포 선셋> 의 전략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그러나 자의식 강한 솔직 토크에다 자신의 뇌와 혀 모두를 섞어대는 방식은 오히려 우디 알렌 식의 시디신 코미디 맛이 솔솔 난다. 비포>
암튼 더 이상 마땅한 배역을 찾을 수 없을 때, 자신이 만든 영화를 들고 나오는 이 여배우의 맹랑함이 참으로 매력적이지 않은가. 특히 영화 내내 자신이 찍은 사진을 이용해 총알 같은 이미지의 전시회를 만들어내고, 들고 찍기로 파리의 여기저기를 누비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쏟아 붓는 이 여배우의 자의식 어린 시도가, 부디 당당하고 참신하게 계속되길 바라마 지 않는다.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